[매일춘추] '단오풍정'으로 피서하기

입력 2014-05-30 07:50:19

어느덧 한낮의 햇볕이 청양고추처럼 매워졌다. 6월 2일, 단오인 절기가 무색하리만큼 때 이른 더위로 마음은 벌써 해변에 앉아 있다.

단오제는 첫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다. 농경사회에서는 가장 큰 명절로 여름 더위를 탈 없이 보내고 질병을 예방하는 뜻에서 창포에 멱을 감았다. 풍성한 음식과 민속놀이를 통해 결속력을 강화시켰다.

2005년에는 강원도에서 발 빠르게 신청한 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면서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원조'를 논하는 실랑이도 있었다. 단오는 중국에서 전래되어 우리의 전통의식으로 전승된 세시풍속이다.

단오제의 유구한 역사는 그림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조선시대의 풍속화가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이 그린 '단오풍정'(端午風情)이 좋은 예다. 신윤복은 춘화(春畵)를 그리다가 도화서에서 쫓겨났을 정도로 남녀의 애정행각을 사실적으로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주로 양반과 기생의 유흥을 그림소재로 다루면서 시대의 뒷골목을 조명한 풍속화를 그렸다.

'단오풍정'은 단오 날을 맞아 기생들이 물가에서 노는 장면을 사진처럼 기록한 그림이다. 때는 양기가 충천한 오시(午時)에 여인들의 과감한 노출 수위가 '19금'을 능가한다. 노랑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채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을 중심으로, 엑스트라 기생들이 다양한 포즈로 은근한 재미를 선사한다.

화면을 중심으로 'Y'자 계곡을 따라 물이 흐른다. 왼쪽 하단에는 여인네들이 저고리를 벗은 채 치마는 최대한 걷어 올려 멱 감기에 분주하다. 콧노래 흥얼거리며 몸과 마음을 씻어내기에 바쁘다. 기방에서 제일 잘 나가는 기녀는 벌써 꽃 단장을 마치고, 그네를 타고 있다. 그녀를 중심으로 오른쪽 상단에는 두 여인이 나무그늘에 앉아 머리를 다듬는다. 오른쪽 하단에는 아주머니가 술병과 음식을 담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그네 타는 여인 쪽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그런데 왼쪽 상단에는 여인들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바위 뒤에서 최대한 몸을 낮춰 숨죽이며 여인들 감상에 빠진 까까머리 동자승이 그들이다. 양반도 아니고 머슴도 아닌 왜 하필 동자승이었을까. 작가는 여인들의 은밀한 광경을 보편적인 남성의 시선이 아닌 특별한 동자승의 시선에 맞춰 센스만점의 기대 효과를 노렸다. 그뿐만 아니라 에로틱한 광경은 곳곳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신윤복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감상자에게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단오는 신윤복의 걸작 '단오풍정'으로 하여 비로소 예술화되었다. 사람들은 '단오풍정'을 통해 단오를 잊지 않고 챙긴다. 이 무더위에 '단오풍정'을 보면서 시원한 물가에서 노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도 지혜로운 피서의 묘책일 수 있다.

김남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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