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사용 줄어 경영난, 신규시장 개척"…김화동 한국조폐공사 사장

입력 2014-05-29 07:30:33

5만원권 도입 경영 실적 결정적 타격, 위조방지 기술 영역 주목

지난해 딸을 위한 직장생활 지침서를 발간해 주목받았던 김화동(56) 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이 한국조폐공사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30년 넘게 몸담았던 공직을 떠나 지난 4월 공기업 최고경영인으로 변신했다.

그런데 그의 인생 이모작의 시작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것 같다. 유산이 많은 부잣집 막내가 아니라 곤궁한 집안을 책임지고 일으켜야 하는 맏이의 입장이 됐기 때문이다.

28일 대전시 유성구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조폐공사 본사에서 만난 김 사장은 그동안의 안부를 물은 뒤 곧바로 기자의 지갑을 살펴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갑에는 5만원권과 1만원권 등 현금 6만원, 신용카드, 운전면허증, 은행보안카드, 명함이 꽂혀 있었다. 김 사장이 "유 기자, 그 현금은 언제부터 지갑에 들어 있었지요?"하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열흘도 훨씬 지났다. 보름 전 결혼식 축의금을 준비하면서 현금인출기에서 출금한 이후 그대로 지갑 속에 머물러 있다. 혹시나 현금을 사용해야만 할 상황에 대비해 적은 부피의 고액권을 준비해 두고 있었지만 막상 이날 인터뷰를 위해 대전으로 가는 길에도 현금을 쓸 일은 없었다. 열차표는 스마트폰으로 예약하고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국내 대도시의 대중교통(택시 포함)은 모두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하다.

김 사장은 "기본적으로 한국조폐공사는 '돈'을 찍어서 한국은행에 납품하고 그 수입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이라며 "'현금' 사용량이 줄어듦에 따라 한국조폐공사 살림이 팍팍해지고 있다"고 어려움을 설명했다.

특히 지난 2009년 5만원권 도입은 한국조폐공사의 경영실적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한국조폐공사가 한국은행으로부터 지폐 한 장당 납품대금을 받는 구조를 감안하면 5만원권 1장을 납품할 경우 1만원권 4장, 5천원권 9장의 매출감소로 이어진다. 더욱이 5만원권 공급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조폐공사의 신규 지폐 제조량은 2008년 17억1천만 장에서 5만원권 출시 후인 2012년 5억5천만 장으로 3분의 2 이상 줄었다. 설상가상, 수표수요도 급감했다.

이에 따라 한국조폐공사의 지폐공급 매출은 같은 기간 40% 이상 감소했으며 당기순이익 56억원이던 영업실적은 당기순손실 60억원으로 돌아섰다.

김 사장은 "한국조폐공사를 둘러싼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다"면서도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마음가짐으로 신규시장 창출과 기술개발력 향상에 집중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김 사장이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해외시장과 위조방지기술 영역이다.

그는 "보안잉크를 비롯해 전자주민증과 같은 최첨단 보안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 수출시장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아울러 김 사장은 새롭게 입은 공기업 사장이라는 옷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며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필요한 자원을 동원한 뒤 선후배와 동료들을 설득해 '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민간에서도 통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신호도 있었다. 한국조폐공사 노동조합은 그동안 신임 사장 부임에 즈음해 관례로 행했던 사측과의 '밀고당기기'를 생략했다. 어려운 회사 사정을 감안한 이유가 가장 컸지만 김 사장을 반대할 큰 결격사유가 없었다.

박준용 한국조폐공사 해외시장개척팀 차장은 "사장님의 구체적인 면모까지 확인할 기회는 없었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선비 스타일'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공사의 도약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임위원 재직 시절 현장 확인을 위해 몇 차례 방문했을 뿐 김 사장에게 대전은 낯선 곳이다. 연구단지 내에서 일하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몇 명 있지만 바쁜 일정 탓에 자주 자리를 하지는 못한다. 경북 군위가 고향인 김 사장은 각종 경조사로 고향과 대구를 오가는 길이 편해졌다며 몸도 마음도 고향에 더 가까워진 것을 실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 사장은 한국조폐공사와 지역의 상생을 약속했다.

"기업의 지역공헌활동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다. 대전 본사뿐만 아니라 경산 화폐본부가 지역민들께 신세만 지는 곳이 아니라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방법을 찾고 실천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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