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칼럼] 각오가 돼 있는가?

입력 2014-05-26 10:28:18

공짜 안전은 없다. 결국은 돈이다. 안전, 안전하지만 다 돈이 들어갈 곳뿐이다. 또 핵심은 시간이다. 빨리빨리와 대충대충은 그만둬야 한다. 더 느려져야 하고, 더 지체돼야 하고, 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돈과 시간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안전이다.

국정의 모든 초점이 안전에 쏠려 있다. 고속성장을 위한 질주에 정신이 팔려 편법과 불법 그리고 비정상이 정상처럼 간주되어 온 데 대한 반성 분위기가 압도하고 있다. 다른 이야기를 했다가는 몰매라도 맞을 판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안전 관련 예산을 우선 배정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정부의 재정운영 우선순위에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허리가 뭉텅 잘려나간 각종 안전 관련 예산이 부활하거나 대폭 증액될 것이 확실하다. 최근 몇 년간 예산 배정의 최우선 순위는 복지와 교육이었다. 그 자리를 안전에 내주어야 한다.

정말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들은 사방에 널려 있다. 이들이 모두 가을 국회에서 돈을 달라고 손을 벌릴 것이다. 돈을 안 줄 도리가 없다. 세월호 참사가 아니더라도 진작에 해야 했을 일이다. 눈에 보이는 곳도 지천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의 위험도는 더 높다. 도무지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야 우리 사회의 안전도가 높아질지 측량도 안 된다.

문제는 돈 들어갈 곳이 안전뿐이 아니라는데 있다. 복지와 교육, 국방과 환경 등 돈을 더 달라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안전이 앞서면 폭발적 증가세에 있는 복지와 교육관련 예산 배정도 속도조절에 들어가야 한다. '무상시리즈'에 대한 수술도 불가피하다.

가계를 들여다보자. 의외의 지출이 발생한다면 방법은 무엇인가. 들어올 돈이 일정하다면 먼저 다른 쓰임새를 줄여야 한다. 지출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도 뾰족한 수가 없으면 빚이라도 얻어야 한다. 재정은 어떤가. 세출 증대 요인은 무궁무진하다. 세월호 같은 돌발 요인이 발생할 경우는 더 그렇다. 세출의 우선순위 조정으로는 부족하다. 늘려도 모자랄 판에 줄이는 것은 어렵다. 돈을 더 만들어야 한다. 세입의 증대가 필요하다. 세금을 더 걷지 않는다면 가계처럼 부채가 늘어나야 한다.

안전 없는 복지는 사상누각이라는 지적은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런데도 예산 배정의 우선순위 변경 없이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다 하겠다면 목청만 높이고는 하나도 제대로 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결국 일이 되게 하려면 국정지표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 안전을 강조하지만 예산이 뒤따르지 않는 정책은 허구이며 구두선(口頭禪)일 따름이다. 안전이 앞에 가면 복지나 교육이나 다른 항목이 뒤로 밀려나야 하고 쓰임새도 줄여야 한다. 복지 달성 소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쏟아지는 비판도 감수해야 하고 이것도 저것도 다 해내라는 공세도 막아내야 한다. 정부는 과연 그럴 각오가 돼 있는가?

국민들의 희생과 양보도 더 필요하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북유럽 같은 복지를 원하면서 세금은 그들의 절반만 내려 하는 것은 억지다. 인상이 불가피한 각종 서비스 요금도 더 지불해야 한다. 싼 것만 찾다가는 어디서 뻥하고 터질지 모른다. 안전 강화에 따른 비용부담은 우리 몫이다. 세금을 더 내기도 싫고 지갑이 가벼워지는 것도 싫다면서 복지와 환경을 강조하고 거기에 안전강화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불법과 편법 그리고 속도전에 익숙해져 있는 문화도 바꿔야 한다. 절차와 규정을 따르고 법을 지키는 데는 돈뿐 아니라 시간의 희생도 반드시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냥 넘어가던 일도 일일이 점검하고 고쳐야 한다면 답은 나와 있다. 그 부담은 우리 몫이다.

'준법투쟁'이라는 말이 있다. 법을 지킨다는 뜻의 준법이 투쟁이란다. 무슨 말인가? 규정대로 절차를 밟고 안전을 위해 무리하지 않는 것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우리나라다. 관행을 들먹이며 불법과 탈법이 정상처럼 반복되어 온 우리나라다. 그 혜택(?)을 우리는 지금껏 누리면서 잘 살아왔다. 그런 비정상과 불'편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나라를 위해서는 우리가 더 많은 희생을 지불해야 한다.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각오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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