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한옥, 잘 복원하면 대구 알리는 '멋진 공간'
사람들은 '새것'을 선호한다. 그것이 옷이든, 차든, 남의 손때가 묻으면 중고라는 이름으로 가격이 낮아진다. 집도 마찬가지다. '신축' 건물에는 세월의 흔적과 이야기가 담긴 집보다 높은 값이 매겨진다. 이러한 흐름을 거슬러 공간에 담긴 역사와 의미를 좇는 사람이 있다. 대구 중구에 있는 적산가옥과 한옥을 복원해 '판 게스트하우스'를 연 손미숙(53) 사장이다. 헌 것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더 빠르고, 경제적인 방법이지만 그는 공간을 복원하고 재생하는 방법을 택했다.
◆역사를 되살린 게스트하우스
판 게스트하우스(이하 판)는 골목에 숨어 있다. 버려진 한옥과 적산가옥을 손질해 게스트하우스와 레스토랑으로 변신시킨 곳이다. 지난해 8월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손님의 발길이 뜸했지만 이제는 주중에도 객실 절반 이상이 찰 정도다. "요즘에는 인터넷 검색을 해서 유럽에서도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찾아와요. 네덜란드, 핀란드, 독일, 프랑스 등 국적도 다양해요."
게스트하우스는 크게 돈 되는 사업이 아니다. 손 사장은 "아직도 적자"라며 웃으며 말했다. 대구에 개인이 투자해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연 것은 그가 처음이다. 손 사장은 낡고 오래된 것에 마음이 끌렸다. 원래는 대구 약령시 근처에서 한옥을 찾아다녔지만 걷다 보니 우연찮게 이 동네까지 왔다고 그는 설명했다. "적산가옥과 한옥이 이 동네의 주인 같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살았던 곳이라고 적산가옥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핵심은 '복원'이었다. 지난해 1월 시작된 리모델링 공사가 6개월 이상 걸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변변한 간판 하나 못 걸고 골목 안에 숨어 있자 도심 재생과 연결되는 사업이라며 대구 중구청에서 입구에 '작은 간판'도 달아줬다.
◆50대 인생에서 벌인 '판'
하고많은 일 중에서 왜 하필 게스트하우스였을까. 자녀 교육 때문에 미국에서 7년, 말레이시아에서 3년간 살았던 그는 두 자녀에게 "나중에 너희가 다 크고 나면 네팔에 가서 게스트하우스를 열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산을 좋아하는 그가 네팔 대신 찾은 곳은 공교롭게도 대구였다. 손 사장은 "나는 꿈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나이에 내가 어디서 일할 수 있겠나. 내가 나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그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용기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손 사장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살 때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프랑스 레스토랑의 문을 두드렸다. "프랑스 사람이 주인 겸 셰프였는데 '돈 안 받고 식당 설거지를 해도 좋다'고 무턱대고 일을 시켜달라고 졸랐어요. 그때 '용감한 한국인'이라면서 일해보라고 했고 1년간 주방에서 일했어요. 항상 애들 뒷바라지만 하다가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낸 일이었어요."
◆매주 금요일, 재즈 콘서트
공간은 사람을 모은다. 레스토랑도 게스트하우스도 사람을 모으는 공간의 속성은 같다. 손 사장은 음악을 좋아한다. 재즈를 좋아하는 주인장 덕분에 매주 금요일 저녁 재즈 선율이 골목 어귀까지 울려 퍼진다.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온 이 콘서트는 세월호 사고가 터진 4월에 두 번 취소한 것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매주 이어왔다. 무대에 서는 뮤지션들도 수준급이다. 성기문 재즈 트리오, 이영경 트리오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즈 뮤지션들이 판을 찾는다. 손 사장은 "처음에는 지인들에게 전화 돌리고 연락해서 관객들을 채웠지만 지금은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이제 내가 아는 관객보다 모르는 관객이 더 많다"고 웃었다.
게스트하우스 안마당에는 진달래 나무가 있다. 손 사장은 "올봄에 진달래가 가장 먼저 꽃을 피웠다"고 했다. 나무가 한 뼘씩 자라는 만큼 손님들의 발길도 늘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판의 목표는 뭘까. "적산가옥은 이제 100년이 다 돼가는 건물이에요. 아무리 건물을 새로 잘 지어도 세월의 흔적까지 되살릴 수는 없어요. 앞으로도 판을 잘 보존해서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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