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행복편지] 여전히 슬픈 봄날에

입력 2014-05-20 07:17:04

바람이 불면 아카시아 향기가 달달하게 스쳐가던 5월도 절반을 넘어섰군요. 붉은 넝쿨장미의 고혹적인 자태마저 올해는 슬프게 느껴지네요. 저만 그러겠어요? 한 달 넘게 '세월호'의 침통한 일들이 먹구름처럼 뒤덮었으니 누구 하나 없이 울적한 봄을 보낼밖에요.

이 환장할 봄날에 고 박완서 작가가 전쟁이 났던 자신의 스무 살을 기억하며 쓴 문장이 떠오르네요. "인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할 것 천지였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틀째인 1950년 6월 27일 밤 10시, 전쟁으로 불안해 있는 서울시민들에게 이승만 정부는 '서울을 사수할 것이니 국민은 동요하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했다지요. 하지만, 대통령은 전쟁이 일어난 지 46시간 만인 27일 새벽 2시에 심야 특별열차를 타고 대전으로 피란을 갔다는군요. 그리고 대전에서 '아군이 의정부를 탈환했으니 서울시민들은 안심하라'는 방송을 내보냈다지요. 서울에 있다고 굳게 믿은 대통령이 안심하라는 방송을 했으니 시민들은 당연히 안심할밖에요. 하지만 다음 날인 28일, 서울은 탱크를 몰고 온 북한군에 의해 점령당했지요. 시민들을 내버려두고 거짓 방송을 한 거지요. 참 허탈하군요. 좌초된 '세월호'에서 '위험하니 안전한 선실 내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을 하고 자신들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의 모습과 어찌 그리 흡사한지요.

피란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서 있어야 했던 박완서 작가는 그 당시를 벌레처럼 산 시간이었다고 회상했지요. 3년여 간 치러진 전쟁에서 피란 가지 못한 시민들은 북한군의 강제 동원으로 부역해야 했고, 국군의 서울 탈환 때에는 부역죄가 적용돼 즉결처분을 받아야 했다지요. 그저 살겠다는 본능적인 방어가 이쪽저쪽에서도 죄가 된 거지요. 1'4후퇴 때에는 시민증이 있어야지만 한강을 건너 피란 갈 수 있었다는 기막힌 그 시절, 듣기만 해도 끔찍했던 세월이네요.

인간의 식량자원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곤충인 꿀벌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것이 많은데요. 하나의 개체이면서도 그 개체가 모여 군락을 이루는데 그 군락을 뗄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로 본다고 하는군요. 군락 자체가 유기체인 생물을 '초개체'(super organism) 생물이라고 하는데 개미와 벌이 여기에 속한다고 하네요. 뜬금없이 슬픈 봄날을 이야기하다가 벌 이야기로 옮겨온 이유는 초개체로서 살아가는 벌의 생태가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예요.

오랫동안 꿀벌의 생태학을 연구해온 독일학자 '위르겐 타우츠'는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라는 책에서 꿀벌을 포유동물과 흡사하다고 했는데요. 그 이유가 낮은 번식률과 자식 양육을 위한 젖샘을 분비하듯 로열젤리로 불리는 왕유를 분비한다는 점, 포유류의 자궁같이 벌집이라는 안전한 '사회적 자궁'에서 유충을 양육한다는 점, 36℃의 체온을 유지하듯이 유충의 체온을 35도로 유지한다는 점, 학습능력과 인지능력이 높다는 점 등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사회를 이루며 집단적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과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로 군락을 이루며 사는 벌의 생태가 위르겐 타우츠의 주장대로 닮아있긴 하네요. 여왕벌과 일벌, 수벌이 각자의 일을 제대로 수행해내기에 꿀벌의 군락이 개체를 초월한 하나의 유기체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물론 일벌은 평생 일만 하고 여왕벌은 로열젤리를 먹고 수벌(수컷 벌)은 교미만 하고 죽는, 이런 꿀벌세계의 질서를 인간세계와 단순하게 비교하면 엄청난 모순이 있지만요. 여기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사람다운 사회로 이끌어가려면 꿀벌처럼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는 거지요.

위험에 빠진 '세월호'에서 선장과 선원들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해내고 승객들을 위해 빠른 대처를 했더라면, 해경과 해군이 좌초 신고를 접수하고 발 빠르게 구출에 나섰더라면, 정부 관계자들이 사고대책을 신속하게 세우고 국가적으로 최선을 다했더라면, 가라앉는 배를 실시간 생중계로 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도 덜 하지 않았을까요.

정말 박완서 작가의 표현대로 '인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할 것 천지'인 세상은 아직 여전한가 봅니다.

권미강/대전문학관 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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