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Rachmaninov, 1873~1943) 앞에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작곡가, 피아니스트, 고전주의자, 낭만주의자, 보수주의자, 혁명가 등 한 단어로만 그를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는 꾸준히 사랑받는 음악가 중 한 명이다. 데이비드 헬프갓의 삶을 그린 영화 '샤인'에서 주인공이 졸업연주회 때 연주하던 곡이 바로 '피아노협주곡 3번'이다. '피아노협주곡 2번'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곡 시작 부분은 낮고 잔잔하면서도 무거운 피아노음이 마음을 내려앉게 하다가 이윽고 물결 치는 듯한 선율로 모든 감각을 의식의 저편으로 실어가는 듯하다. 기차역에서 만나 느닷없이 사랑에 빠진 중년 남녀의 복잡한 심경을 그린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영국의 록 밴드 '뮤즈'(Muse)의 'Blackout'과 'Butterflies and Hurricane'에서도 그의 음악은 모티브가 됐다.
오늘 소개할 곡은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다. 소련 혁명 후 미국으로 망명해 생업을 위해 피아니스트로 전향한 라흐마니노프는 1934년 이 곡을 작곡해 일약 대성공을 거둔다. 이 곡은 파가니니의 '무반주 카프리스' 중 제24번을 24개의 변주곡으로 만들었다.
뮤즈가 라흐마니노프에게서 영감을 얻었다면 그는 파가니니에게 영감을 얻었다. '무반주 카프리스'는 파가니니가 자신의 모든 연주 기법을 총망라한 24곡의 독주곡으로 브람스와 리스트 또한 이를 바탕으로 작곡한 적이 있으며 이 시대에도 수많은 이들이 다양한 악기의 연주곡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명곡을 어떻게 해석하고 발전시켰을까.
피아노 협주곡과 비슷하지만 전통적인 협주곡의 악장 개념은 없다. 이 곡의 또 다른 이름은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이다. 광시곡은 19세기에 유행했던 형식으로 환상적이고 자유로운 형태의 곡이다. 기본적으로 거침없고 다채로운 구성이 두드러지며 복잡하고 기교가 넘치는 피아노 선율이 풍부한 관현악과 함께 흘러간다. 작곡가인 동시에 빼어난 기교파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였기에 센티멘탈리즘과 피아노의 특색을 살린 새로운 경지의 곡을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특히 18변주 '안단테 칸타빌레'에서는 우수에 찬 아름다움과 풍부한 색채의 조화가 마치 환상적 정경을 보여 주는 것처럼 강한 매력을 풍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JTBC의 '밀회'에서도 바로 이 곡을 사용하여 화제가 됐다.
이 곡을 연주한 뛰어난 연주자는 많지만 나는 낭만주의자이자 쇼팽의 스폐셜리스트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1887~1982'폴란드)의 음반을 추천하고 싶다. "음악이란 감정의 표현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던 그의 말처럼 피아노 선율에 연주자의 낭만적인 판타지가 배어 있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연주라는 생각이 든다. 루빈스타인만의 음악적 카리스마가 곡에서 느껴진다. 파가니니의 음악적 가치가 무궁무진한 카프리스, 라흐마니노프의 독특한 피아노 기법과 다양한 형식의 풍부한 색채감, 이 모든 것들이 이 곡을 영원한 명작으로 평가받게 하는 것 같다.
신동애(오디오 동호회 '하이파이클럽' 회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