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대학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5개월이 흘렀다. 원룸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니 작은 것 하나가 큰 행복이다. 무엇보다 큰 기쁨은 두 동생과 다시 한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앞방에는 10살 어린 남동생이, 옆방에는 3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 심심하면 언제든지 문을 열고 들어가 수다를 떤다. 인터넷 창을 켜 놓고 우스운 동영상을 보며 낄낄거리는 게 하루 중 큰 즐거움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동생들과 오랜 기간 떨어져 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동생들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쏟아내는 언니, 누나가 돼 있었던 것이다. 동생들 나이 때 듣기 싫었던 말들만 쏙쏙 골라 들려준다.
중2 남동생 중간고사 기간 때의 일이다. 어리기만 하던 동생이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한다니 대견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생에게 내뱉는 말 속에는 이런 내 마음이 단 1%도 묻어나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마침 공부를 하러 방에 들어가는 동생에게 "이제 들어가야지?"라고 타이르는가 하면, 공부하다 잠깐 물을 마시러 나온 찰나를 포착해 "왜 집중을 못하냐"며 지적하기도 했다. 동생이 시험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내 막말(?)은 절정에 달했다. 동생을 보자마자 뱉은 말이 "시험은 잘 봤어? 몇 점이야?"였던 것. 입에서 말이 나오는 순간 깨달았다. '학창시절, 내가 부모님에게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지.'
어느 순간 동생의 힘없는 표정을 봤다. 말 속에 나쁜 의도는 없었지만 내 말들이 동생에게 조금씩 상처를 입히고 있었던 것이다.
쉽고 빠르게 말을 전할 수 있는 세상이다. 거기에는 SNS가 한몫을 담당한다. 시공간을 초월해,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기술적 문제뿐만이 아니다. 담는 내용 또한 쉬워졌다. 독설, 직설, 돌직구식 화법 등이 사람들의 인기를 얻는다. '어떻게 말을 전달할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더 직설적일수록 소위 말하는 '쿨한 사람'이 되곤 한다.
한 번쯤은 직설 화법에 상처받은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자. SNS에 쉽게 쓰인 친구의 댓글에,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조언'을 가장한 돌직구에 맞아 아팠던 적이 없는지. 내게 아픈 돌은 남에게도 아프다.
남이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독심술이 필요하거나, 어렵게 말할 필요는 없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남도 듣고 싶고, 내가 듣기 싫은 말은 남도 듣기 싫은 법이다. 오늘은 학교에서 돌아온 동생에게 꼭 말해줘야겠다. "오늘 하루도 수업 듣느라 고생했어! 이제 좀 쉬어!"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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