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발자취 좇다 보면 조선 왕실 역사의 향기 솔솔…

입력 2014-05-14 07:42:11

'역사 공부의 장' 경기도 여주시

다도·예절 교육관으로 쓰이는 감고당 사랑채. 투명 유리창이 이색적이다.
다도·예절 교육관으로 쓰이는 감고당 사랑채. 투명 유리창이 이색적이다.
신륵사 구룡루와 그 너머로 보이는 극락보전.
신륵사 구룡루와 그 너머로 보이는 극락보전.
불교 유물과 불교 관련 목조각들이 전시된 목아박물관.
불교 유물과 불교 관련 목조각들이 전시된 목아박물관.
세종대왕릉 입구 세종전 앞뜰에서 관람객들이 과학도구 모형을 구경하고 있다.
세종대왕릉 입구 세종전 앞뜰에서 관람객들이 과학도구 모형을 구경하고 있다.

조선의 유적은 어딜 가나 있지만 왕실과 관련된 유적은 대부분 서울에 있다. 서울 바깥에 있는 조선 왕실 관련 유적이라고 하면 많이 알려진 곳이 조선 태조의 영정과 조선왕조실록 사고가 있는 전북 전주시의 경기전이나 경기 수원시의 화성행궁 정도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구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약 2시간 30분을 달리면 조선 왕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도자기와 쌀로 유명한 여주가 바로 그곳이다.

◆명성황후는 어떤 집에서 태어났을까?

여주에서 조선 왕실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을 하려면 여주 톨게이트에서 가장 가까운 명성황후 생가부터 출발하는 것이 빠르다. 여주 톨게이트를 나와 우회전 두 번만 하면 나오는 곳이 바로 명성황후 생가터와 명성황후 생가기념관이다. 명성황후 생가는 명성황후(1851~1895)가 태어나 여덟 살 때까지 살던 곳으로 1687년(숙종 13년)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묘막으로 건립되었는데 당시 건물로 남아있는 것은 안채뿐이었으나, 1995년에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복원됐다.

명성황후 생가는 명성황후가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조선시대 중부지방 살림집의 특징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一자형으로 놓인 행랑채 뒤로 ㄱ자형 안채와 문간채가 안마당을 감싸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경상도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一자형 가옥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명성황후 생가는 한옥에 관한 지식이 없더라도 들어가 보면 꽤 큰 규모의 집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명성황후 생가터에는 명성황후가 고종의 비로 책봉되기 전까지 살았던 감고당(感古堂)도 자리해 있다. 감고당은 숙종이 인현왕후의 친정을 위하여 지어준 집으로 원래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에 있었던 것을 명성황후 생가터 복원과 함께 여주로 옮겨왔다. 감고당이라는 이름은 1761년 영조가 효성이 지극했던 인현왕후를 기려 '감고당'이라는 편액을 하사한 이후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감고당 사랑채는 현재 다도와 예절교육장으로 쓰이고 있는데, 창문이 투명하게 돼 있어 이색적이다.

◆무학대사의 스승이 입적한 신륵사

명성황후 생가터에서 20분을 더 가면 나오는 신륵사는 특이하게 강가에 위치한 사찰이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산을 조금이라도 타야 갈 수 있다면 신륵사는 남한강 바람을 맞으며 조금만 가면 나온다. 신륵사는 신라시대 창건된 절이나 이 절이 유명한 이유는 고려시대 왕사(王師)로 불리는 나옹선사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나옹선사는 입적할 때 오색구름이 산마루를 덮고, 구름도 없는 하늘에서 비가 내렸으며, 수많은 사리가 나왔고, 용이 나옹선사의 초상을 보살폈다는 전설이 있다. 나옹선사와 조선의 연결고리는 바로 무학대사다. 나옹선사의 제자 중 한 명으로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의 틀을 만든 무학대사이기 때문이다.

신륵사 주변은 관광단지처럼 조성돼 있다. 대한민국의 유명한 사찰 입구가 대부분 관광지처럼 꾸며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다른 절은 관광단지가 멀리 떨어진 산 아래에 있어 절 자체는 조용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신륵사는 사찰 맞은편 강가에 캠핑장과 위락시설이 조성돼 있어 조용한 사찰 분위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래도 신륵사의 가장 큰 법당인 극락보전과 그 앞에 지어진 구룡루는 남한강을 감상하기에 최고의 장소다.

신륵사 주변은 관광할 곳도 많다. 남한강 가에 있다 보니 여주보, 이포보 등으로 향하는 자전거길 입구가 있고, 조포나루가 있던 곳에는 황포돛배나루터가 있어 남한강을 유람하면서 여주의 이곳저곳을 구경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신륵사로 들어오기 전에 위치한 여주도자명품관과 반달미술관에서는 여주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고 생활도자기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어 쇼핑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만약 불교에 관심이 많은 관광객이라면 신륵사에서 5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볼 수 있는 목아박물관도 들러보기를 권한다. 이곳은 목조각장인 목아 박찬수 선생이 각종 불교 유물과 불교 관련 목조각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박물관 지하에는 불교 목조각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유명한 목조각들도 전시돼 있고, 1층의 기념품 상점에서는 좋은 향도 구할 수 있다.

◆이름이 같은 듯 다른 두 왕릉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을 가기 위해 내비게이션에 '영릉'이라고 쳤더니 2개가 뜬다. 그중 제일 위에 있는 것을 눌러서 갔더니 도착한 곳은 효종대왕릉이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두 임금의 능 이름이 같은 듯 달랐다. 세종대왕릉의 정식 이름은 '영릉'(英陵)이고 효종대왕릉의 정식 이름은 '녕릉'(寧陵)이었다. 내비게이션은 이를 똑같이 '영릉'으로 쓰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행히 두 능의 거리가 멀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충분히 헷갈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내비게이션에 '세종대왕릉'이라고 치는 것이 오히려 나을 뻔했다. 실제로 교통표지판에도 '세종대왕릉' '효종대왕릉'으로 표시가 돼 있다.

세종대왕릉은 세종대왕과 그의 비 소헌왕후 심씨가 합장돼 있다. 왕릉 입구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조선왕릉이 지정됐음을 알리는 비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고 생각보다 웅장한 입구의 모습에서 왕릉의 위엄도 느낄 수 있다. 세종대왕릉 입구에 위치한 세종전과 앞뜰에는 혼천의와 같은 세종대왕 시절 만들어진 과학기구들의 모형이 전시돼 있어 관람객들의 관심을 끈다.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까지는 호젓한 산책로도 있어 왕릉을 구경한 후 숲에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아마 서울 바깥에서 조선 왕실의 유적을 여주처럼 많이 가진 도시는 드물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자녀를 둔 가족이라면 출발하기 전 약간의 역사공부를 한 뒤 이곳을 둘러보면 도자기와 쌀, 그리고 한 백화점이 세운 프리미엄아울렛의 유명세 너머 여주의 숨은 역사적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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