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아버지를 빼 닮은 심산 김창숙

입력 2014-05-10 08:00:00

성주가 낳은 대유학자이자 조선의 마지막 선비, 유림 대표, 독립투사, 교육자로 추앙받고 있는 심산 김창숙(1879~1962). 1879년 오늘 성주에서 태어난 그가 국민의 큰 존경을 받는 데는 부친 김호림의 영향이 컸다. 그의 부친은 동학혁명이 발생했을 때 서당에서 학습 중이던 아들과 동료 학동들을 불러내 농사를 도우라고 지시했다. 농작물을 생산하는데 귀천이 없다며 농번기 농사일 동참을 지시한 것. 부친은 농부들에게 밥을 지어 보내면서도 신분 고하를 따지지 않고 나이순으로 식사를 하도록 배려했다.

이런 부친의 철학을 배우고 자란 심산이 어떤 삶을 살았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그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1909년에는 일진회의 한일합병론을 성토하는 글을 썼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의 유림 대표로 독립운동을 주관했고, 광복 이후에는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의원을 역임했다. 유도회를 조직하고 유도회 회장 겸 성균관 관장을 지내면서 성균관대학교를 설립, 초대총장에 취임했다. 이승만 정권에 반대해 수난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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