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읽어주는 남자] 김추자-늦기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입력 2014-05-08 14:04:46

'마녀'로 불린 가수가 있다. 김추자다. 최근 그가 30여 년 만에 컴백한다는 소식에 언론들은 '원조 섹시 디바'라고 소개했지만 마녀라는 별칭이 더 와 닿는다. 그의 노래를 듣고 매력을 넘은 마력에 지배당했기 때문이다.

김추자는 필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데뷔(1969)하고 은퇴(1980)한 가수다. 그래서 옛날 신문 기사와 음반으로만 접했다. 김추자보다 먼저 빠져든 뮤지션은 신중현이다. 신중현이 키운 신중현 사단 중 한 명이 바로 김추자였다. 신중현은 펄 시스터즈(커피 한잔)부터 시작해 이정화(봄비), 김추자(늦기 전에), 임아영(마른잎), 김정미(간다고 하지마오), 임희숙(내 마음 모두 주어), 바니걸스(하필 그 사람), 박점미(몰라), 신정숙(인형), 이경화(기타를 쳐줘요), 김완선(리듬 속의 그 춤을)까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수많은 디바(여가수)에게 곡을 써줬다. 히트한 가수도 있고 그러지 못한 가수도 있는데 김추자는 펄 시스터즈와 함께 스타덤에 오른 편에 속한다.

신중현은 김추자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신중현 작편곡집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1969)의 2002년 복각 음반 속지에 적혀 있는 신중현의 글을 발췌해 정리했다.

"1968년 펄 시스터즈가 스타덤에 올라 활약하자 신인 가수 지망생들이 나의 사무실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당시 18세였던 김추자는 아는 후배를 통해 찾아왔다. 하지만 특별히 관심이 가지 않았다. 김추자는 다른 지망생들처럼 매일 사무실에 찾아와 대기했다. 당시 나는 바쁜 관계로 거의 3주 동안 오디션을 볼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시간을 내 김추자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다. 김추자는 온 힘을 다해 불렀지만 너무 긴장한 탓인지 박자를 틀렸고, 떨리는 목소리도 냈다. 그러나 김추자의 목소리가 좋다고 느껴 바로 합격시켰다. 이후 김추자를 위해 신곡을 쓰기 시작했고, 연습에 이어 녹음에 착수하기까지 약 3개월이 걸렸다. 데뷔 앨범을 발표한 당시의 김추자는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1970년 동양방송(TBC)의 '님은 먼 곳에'라는 드라마에서 같은 제목의 주제가를 불러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우리 가요계에 대형 스타로 발돋움했다."

역시 속지에 적혀 있는 국내 음반 복각 전문가 김기태 씨의 회고는 이렇다. "김추자는 가창력과 댄스 실력, 미모까지 겸비했고, 노래는 물론 많은 스캔들로 1970년대를 풍미한 대단한 가수다. 춘천에서 다섯 자매의 막내로 태어난 김추자는 춘천여고 시절 강원도 기계체조 대표 선수와 응원단장까지 도맡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소녀였다. 민요와 창에도 뛰어났던 김추자는 춘천향토제에서 수심가를 불러 3위에 입상했다. 그때 김추자는 가수의 삶을 결정했던 것 같다. 김추자는 가수의 길을 걷기 위해 물어물어 서울 삼각지에 있던 신중현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김추자의 노래에 반한 신중현은 펄 시스터즈 이후 최고의 히트작을 만들어 낸다."

회고에는 이번 컴백을 예견한 듯한 내용도 있어 흥미롭다. '현재 주부로 살고 있는 김추자는 가요계 컴백을 시도했으나 아직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언제가 돌아온 대형 가수의 모습을 볼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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