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생각] 구기 종목 혐오자의 변명

입력 2014-05-08 14:04:51

난 구기 운동 종목을 싫어한다. 누군가가 축구공을 뻥 차는 소리가 들리면 자연스럽게 몸을 움츠린다. 농구공이 내게 날아오면 내 얼굴에 맞을까 봐 손을 뻗어 쳐 내기 바쁘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1차전 때 외야석 관중들을 취재하다가 누군가가 친 홈런성 타구에 관중의 함성이 터지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기도 했다.

왜 자꾸 공 앞에서 '쭈구리'가 되는가 싶어 내가 살아온 삶 어디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되짚어 봤다.

그러다 중학생 때의 한 장면과 맞닿았다. 지금도 만만치 않지만 예전부터 난 뚱뚱하고 둔했다. 그래서 같은 반 아이들도 날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사건 하나가 터졌다. 날이 꽤 추웠던 체육 시간, 같은 반 아이들 몇몇이 축구공을 차며 몸을 풀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따뜻한 햇볕이 좋아서 스탠드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어디선가 날아온 축구공이 내 코와 이마 사이를 정확하게 맞혔다. 그러면서 쓰고 있던 안경이 두 동강 나버렸다. 그 누구도 '괜찮냐, 다친 데 없느냐,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네가 왜 괜히 공도 못 피하고 앉았냐'는 핀잔만 들었을 뿐이었다.

고1때 사건도 하나 더 있다. 축구 드리블 실기시험을 보아야 했던 그때, 축제 준비 기간이라 체육 시간에도 반장이라고 수시로 교무실 호출을 받았던 탓에 가뜩이나 못하던 축구 드리블을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그냥 실기시험을 봐야했고 결국 스텝이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지켜보던 체육선생님은 "그것도 제대로 못하냐"며 화를 냈다. 졸지에 '모자란 아이' 취급을 받아버린 나는 부끄러움과 속상함이 밀려왔고 결국 운동장 한구석에 처박혀 서럽게 울었다.

성인이 돼서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기 운동을 좋아하도록 노력하라'고 강요받는다. 10대 때 겪은 구기 운동에 관한 여러 가지 안 좋은 기억들이 묻혀 있다가 누군가가 축구나 농구, 심지어 골프까지 권하는 순간, 그때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마음을 괴롭힌다. '극복을 위해 노력이라도 해 봤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작은 기억들이 마음의 상처로 남은 사람들에게 그 질문은 또 다른 상처일 수 있다. 노력은 '인정받는 것'이라 내가 무슨 노력을 해도 지켜보는 사람이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노력이 아니게 된다. 굳이 구기 운동만이 운동은 아닌데 잘 못한다, 싫어한다고 하면 눈초리가 이상해진다. 수영도 하고 등산도 하고 자전거도 타지만 지금도 구기 운동을 하라고 하면 두렵다.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나 또한 세월호 침몰 사건을 언론과 SNS 등으로 접하면서 이들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목격했다.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는데 자신만 달라져 있는 이 현실 속에서 기다려주지 않고, 노력이라도 하라며 다그칠 세상에 그들이 또다시 상처받을까 하는 걱정 말이다. 차라리 입 꾹 다물고 같이 옆에 있어주면서 손 내밀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우리의 올바른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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