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24시 현장기록 112] 아기에게 휴대폰을 주면 경찰관이 출동합니다!

입력 2014-05-08 14:06:31

"112경찰입니다."

"(부스럭 부스럭… 퍽퍽…)"

3월 15일 밤중에 걸려 온 112 신고 한 통. 아무 말 없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참 들렸다. 순간 112 신고접수 경찰관은 초긴장 상태가 돼 계속 신고 내용을 청취했다. 순간 112 신고접수 경찰관의 직감이 발동했다. 느낌이 좋지 않다.

'신고자가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인가? 이 둔탁한 소리는 뭐지? 혹시?'

그러다 전화기 저편 너머로 여자 울음소리 비슷한 비명이 잠깐 들린 후 전화가 바로 끊긴다. 바로 발신번호를 숨겨 전화를 되걸어 본다. 그런데 받지 않는다.

'감금 상태로 의심된다! 긴급 상황이다!'

신고 내용은 녹취된 파일과 함께 해당 지역 근무자에게 알려졌다. 즉시 출동 지령이 떨어졌고, 형사들이 출동했다. 하지만 상황 발생 현장이 정확히 어디인지, 신고자는 누구인지, 현장의 상황은 어떠한지, 용의자는 몇 명인지, 출동할 때 알고 가는 것은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단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자 울음소리로 추정되는 짧은 비명만 들렸을 뿐이다.

바로 신고자의 휴대폰 위치추적이 개시되고 통신사에 신고자의 인적사항 확인 절차에 돌입했다. 휴대폰 위치 주변을 수색하지만 아파트 밀집지역이라 범위가 너무 넓었다. 출동한 경찰관들은 초조해졌다. 별일 아니면 좋으련만…. 차라리 장난신고였으면 좋으련만…. 드디어 신고자의 인적사항과 주소가 확인됐다. 현장으로 수많은 경찰관들이 긴급 출동한다.

신고자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집을 급습한 결과, 현장 출동 경찰관들은 순간 맥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집안에는 두 살 남짓한 아기가 보행기를 타고 있었다. 두 손에는 스마트폰을 꼭 쥔 채로 말이다. 부모에게 확인해보니 아기가 자꾸 울어서 스마트폰으로 만화 동영상을 재생시킨 후 아기에게 쥐여줬다고 한다. 아기가 만화를 보는 순간에는 울지 않으니까 부모는 고육지책으로 준 것이었다. 부모는 "아기가 잘못 눌러 112로 신고됐나 보다"라며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이고, 김 형사님 또 허탕이네요. 아기가 잘못 눌러서 오인 신고된 모양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상황실에 보고하고 철수하자고. 여자 비명이 아니라 아기가 옹알이하는 소리였나 봐. 그래도 별일 없어서 천만다행이지? 그런데 그 아기 매우 귀엽지 않았어? 하하하."

최근 특별한 신고 내용 없이 아기 울음소리만 들리거나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위치나 현장 상황 등을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의 신고가 112신고센터로 많이 들어오고 있다. 보통 엄마들이 스마트폰에 만화 동영상을 재생시킨 뒤 어린 자녀들에게 시청하게 하거나, 주머니 속에 스마트폰을 넣고 다니다가 112 신고 단축버튼이 잘못 눌러져 신고접수된 것들이다. 이 경우 신고를 받는 경찰들은 유아들의 음성을 여성 비명으로,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납치된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럴 때 경찰은 초긴장 상태가 돼 대처에 들어가지만 거의 대부분 기기 오작동으로 밝혀져 많은 경찰력이 낭비된다.

문제는 스마트폰 오작동으로 인한 신고뿐만 아니라 허위 신고와 과장된 신고에 의해서도 많은 경찰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112신고센터에 급박한 목소리로 운전자가 폭행당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온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신고현장에 출동해 확인해 보면 대리운전기사 또는 택시기사와 술에 취한 승객 사이의 요금 시비 또는 말다툼인 경우가 많고 그 자리에서 원만히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고자는 경찰관이 빨리 오기만을 바라는 마음에 과장된 신고를 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급박한 목소리로 운전자가 폭행당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통상 많은 경찰관이 현장으로 출동한다. 만약 운전 중인 버스기사가 폭행당하고 있다면 추가적으로 승객들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신고접수 초기 단계부터 경찰력을 적극적으로 동원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형사처벌도 가중하여 받게 된다. 그런데 막상 신고현장에 출동하면 굳이 경찰이 출동할 필요가 없는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다음으로 많은 유형이 중'고등학교 친구로부터 SNS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죽고 싶다'는 내용의 연락을 받아 자살이 의심된다는 내용의 신고 유형이다. 연예인 또는 유명인사들의 연이은 자살 뉴스에 노출된 청소년들이 쉽게 죽음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경찰은 초기부터 자살 의심자의 위치추적을 비롯하여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경찰관을 동원한다. 결국 자살 의심자의 신병을 확보해보면 친구들 간의 단순장난이나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투정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와 같은 신고들로 불필요한 경찰력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오작동 신고를 예방하기 위해 어른들이 통신기기를 잘 관리하거나 유아들이 함부로 스마트폰의 긴급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하는 등의 교육이 우선된다면 오작동으로 인한 신고로 경찰력이 낭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정원 (경북경찰청 112종합상황실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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