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중국 동포 한국 생활기] 연장자 동료들과 만든 에피소드

입력 2014-05-08 14:34:41

#1 '대구 아재'와 함께

대구 아저씨와 기숙사를 함께 쓰면서부터 생경스러우면서도 도타운 사건이 생겼다. 심심풀이 삼아 내놓은 건빵을 그가 우적우적 씹는 소리에 깨고 만 것이다. 불도 켜지 않은 자정이 넘은 시간 무슨 홍두깨 내미는 소리인가 싶은데 나의 건빵 한 봉지를 다 드시고는 "나 휴일에 집에 갔다가 올 때 사다 줄게" 하셨다. 정말 그가 주말을 건너뛴 월요일 건빵봉지 외에도 사과까지 듬뿍 들고 오셨다.

그는 밤에 깨어나면 꼭 주전부리하는 습관이 있었다. 나 또한 과자 같은 간식을 즐겨 우리의 베갯머리에는 언제나 주전부리거리가 비어 있지 않았다. 야간 조에 편입된 나는 밤참으로 과일이며 빵 같은 것을 마련해서는 나란히 부부처럼 이웃해있는 대구 아저씨 베갯머리에 갖다놓고 출근한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주간근무로 비운 아저씨의 자리에는 색다른 간식거리들이 덧놓이곤 했다. 이렇게 출퇴근이 엇갈리는 일상 속에서 잠깐 인사나 나누는 정도로 서로 얼굴 보기 바쁘지만 우리는 간식거리들을 바꾸어 먹는 것으로 인정을 나누었다.

작금 60을 넘긴 분 같지 않게 얼굴에 검붉은 혈색이 도는 그이를 대구에서 오셨다고 해서 나는 "대구 아재"라고 부른다. 한 번은 그가 "아재, TV 켜보이소" 해서 무슨 소린지 몰라서 어정쩡해 있다가 나보고 말하는 소리인지 알았다. 우리 중국 연변 사투리로는 나보다 연상인 여성을 간혹 아재라고 부르는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대구 아재'와 나는 야밤중 주전부리로 한 기숙사를 쓴지 얼마 안 되어서부터 오랜 지기 같은 선후배 동료 사이가 되었다.

#2 조 반장과 함께

요즘 아침 일은 조 반장의 커피로부터 맘을 덥히며 시작한다.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우리까지 불러들여 내놓는 커피 컵이라서 더 가슴께가 따뜻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고 작업현장에서 무슨 민폐 끼치거나 도움받을 때면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꼭 말 꼭지에 올리는 그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 다른 동료의 병문안으로 주말 휴일을 빌려 안동에서 서울까지 자차로 찾아뵙는 분이다. 입사 경력은 반년 정도밖에 안 되지만 반장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이 역시나 하는 감명이 입에 오르내리게 한다. 일손이 잰 데다가 쉬는 짬에 다리 아프니 좀 쉬라고 염려해도 계속 줄기차게 일해 나간다. 그의 강건한 모습에서 도무지 설늙은이 냄새를 느낄 수 없다. "나같이 이렇게 나이 먹은 퇴직일군도 회사에서 받아준 기쁨으로 일에 만전을 기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는 원래 은행원으로 30여 년간 일해 왔지만 생수사업에 전 재산을 손해 보았다. 퇴직금을 한 푼도 손에 못 쥐어 보고 빚 갚느라 수년을 허드렛일로 보냈다. 가정의 불화는 불 보듯 뻔했고 맏아들도 40대 밑의 노총각으로 늙어갔다.

당사자인 그의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그러나 티 한 번 내지 않는 그의 얼굴에서 삶의 끈끈한 인내를 절감한다. 그나마 교회에 마음을 기탁했기에 버텨온 이유가 되었고 욕심이 과했기에 사업이 실패했다고 어필했다. 식사할 때마다 그는 회사 동료들과 가족의 안녕 등 화목과 친목을 도모하는 기도로 교리를 다한다.

#3 남 기사와 함께

"니하오." 남 기사는 언제나 중국어로 나의 아침인사를 받는다. 내가 중국에서 일하러 온 동포여서다. 키가 작달막한 노인이지만 무슨 일이나 막힘이 없는 용접기사로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잘 어울린다. 오른쪽 식지가 반 없는 손이 그의 인생 풍상 고초를 잘 설명해주듯 그는 40여 년을 오직 한 우물을 파며 중국에도 몇 년간 파견근무를 다녀온 베테랑 기술자다.

공장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숙소에서도 우리가 정신없이 옷을 주워입고 출근하러 나서면 차로 통근하는 그는 벌써 반시간전 도착해서는 작업할 준비를 마쳤다. 혹 감기로 하루 쉬는 경우 그것도 병이라고 안 나온 거야 하고 농담 반 진담을 해서 나를 부끄럽게 한다. 친구 취직일 때문에 구직정보 신문을 구해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더니 사흘 만에 최근의 신문을 여러 부 가져다주면서 "자꾸 까먹어서 마누라한테로 챙겨왔다 아이가"고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남 기사한테 안 좋은 일이 생겼다. "안녕하십니까?" 예전처럼 아침인사를 드렸는데 "요즘 날씨가 참 춥다 카더라" 하고 동에 닿지 않은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남 기사의 청각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남 기사를 보는 내 맘이 짠하다. 이젠 "강녕하십시오" 하고 나의 아침인사를 바꾸어 드려야겠다.

류일복(중국 동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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