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 주워 생계 청각장애 아버지 뇌출혈 쓰러져
스물여섯 살인 정에스더 씨의 어깨에는 부모님과 언니라는 무거운 짐이 얹혀 있다. 파지를 줍던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 신세를 지고 있고, 어머니는 심각한 류머티스 관절염과 섬유근통, 골다공증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언니는 정신지체를 앓고 있다. 한창 인생이 꽃필 나이에 에스더 씨는 집안 식구를 돌보고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가정환경이 어렵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너무 힘들어졌어요. 부모님과 친언니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돌봐야 하는데 늦게 들어간 대학을 다니면서 가족을 돌보는 게 벅찰 때가 많아요."
◆가난하지만 책임감 강한 부모님
에스더 씨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앓아왔지만 어머니와 함께 가족을 지탱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살았다. 겨울이면 붕어빵과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를 하고, 날이 따뜻해지면 과일이나 멍게를 트럭에 싣고 다니며 팔아 살림을 꾸려왔다.
철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풍족하지 않은 집에 불만도 많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주변 친구들은 부모님을 졸라 유행하는 옷이나 신발을 사입었지만, 에스더 씨는 새 옷 한 번 사 입어 보지 못했다. 아픈 언니도 어린 시절 에스더 씨에게는 불만이었다. 엄마는 장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바깥에 혼자 나가면 집을 찾아오지 못할 정도의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언니에게 온 신경을 쏟고 있어 소외감도 느꼈다.
"사실 엇나가기도 했죠. 집이 가난한 것도, 아픈 언니가 있는 것도 사춘기 때는 이유 없이 싫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할 만큼 철이 들었다. 가진 것은 없지만 성실하게 살면서 검소하게 생활하는 부모님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쉬는 날도 없이 일하던 부모님 덕분에 지금 제가 있는 거니까요.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 같아 더 감사해요."
◆점점 어려워진 생활
넉넉지 않았던 에스더 씨의 집은 어머니가 10여 년 전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장사를 제대로 나가지 못하면서 점점 더 기울었다.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했던 어머니는 관절염뿐 아니라 허리 수술과 골다공증까지 겹쳤다. 결국 언어'청각장애가 있는 아버지는 혼자 일할 수 없어 장사를 접어야 했다.
가족에 대해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했던 아버지는 파지를 줍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 혼자 파지를 가져다 파는 것만으로는 네 가족이 생활할 수 없었다. 결국 살 곳까지 없어진 가족은 2011년 경남 합천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인이 사는 마을에 가족이 살 만한 빈집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사했지만, 막상 도착하자 집주인이 집세를 요구했다. 없는 형편에 집을 계약했지만 벌레가 들끓는 집에서 도저히 살 수 없어 4개월 만에 다시 대구로 돌아왔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을 받기 시작하고 에스더 씨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버는 적은 돈으로 네 식구가 아껴가며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족들이 좀 더 편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 계속해서 파지를 주웠다. 올해부터는 아버지가 민속품을 경매로 사들여 되파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민속품을 사들이려면 돈이 필요해 이곳저곳에서 2천만원을 빌려 밑천을 마련했지만, 사업은 생각보다 풀리지 않았고 아버지와 가족들의 시름도 늘어갔다.
◆쓰러진 아버지
2천만원의 부채를 진 채 가족들을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지난 4월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아버지는 뇌출혈 중에서도 수술이 위험하고 예후도 좋지 않은 숨골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응급 수술에 들어갔지만 이후 아버지는 심정지까지 갔다.
"심정지 이후에 아버지의 피부가 시커멓게 변하는데 정말 돌아가시는 줄 알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의료진의 노력으로 아버지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3일 만에 아버지와 가족에게는 또다시 고비가 왔다. 수술 이후 감염 때문에 재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수술의 성공 여부를 장담하지 못했고, 너무 부담스러운 비용 때문에 어머니도 수술을 망설였다. 그렇지만 에스더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효도도 못 하고 고생만 하셨는데 그대로 보내드릴 수는 없었어요. 병원과 친척들이 모두 회유했지만 제가 고집을 부렸어요. 아버지는 반드시 살아나실 거라고…."
에스더 씨의 바람대로 아버지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어느 정도 의식도 찾았다. 하지만 혼자서는 숟가락 하나 들 힘도 없고,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어머니도 지병으로 손가락이 돌아가고 길거리를 걸어다니다가 계속해서 넘어지는 상태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간병하기 쉽지 않다. 정신지체 언니는 집 안에서 TV만 보고 있을 뿐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모두가 에스더 씨의 짐이 된 셈이다.
에스더 씨는 14학번 새내기가 됐다. 학교를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평소 아버지가 대학생이 되기를 그토록 바랐던 마음을 생각해 학교 수업에 최대한 빠지지 않고, 병원에 있는 아버지도 돌봐가며 생활하고 있다. 긍정적인 에스더 씨이지만 병원비를 보면 앞길이 막막하다. 수술비만 천만원이 훌쩍 넘고 중환자실 입원비와 이후 병원비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
"그래도 버티는 건 부모님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잘 견뎌내시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죠. 포기는 안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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