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 세상의 도를 없앤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7년 대통령선거 때 사용한 이래 '보통사람'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보통사람은 대략 서민을 뜻한다. 따라서 보통사람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은 보통사람 아닌 '특별한 사람'도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런 현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한자어로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황제 노역'도 그러한 사례의 하나였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국민들은 이들과 비슷한 단어를 새삼 뇌리에 각인하게 되었다. '전관예우'가 바로 그것이다.
전관예우는 퇴직한 관리를 잘 받들어 모신다는 말이다. 마음으로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다시 높은 관직이나 큰 돈벌이를 안겨준다. 현직 공무원들이 전관예우를 떠받드는 것은 자기 자신이 퇴직할 때에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불공정한' 특혜다.
전국 지자체 산하의 공사와 공단에 퇴직 고위 공무원이 사장이나 이사장으로 재취업한 경우가 허다한데, 특히 대구가 심하다고 한다. 전국 평균이 60.9%나 되는 것도 놀랍지만, 대구는 무려 77.8%로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아득한 세월을 두고 만년 경제 꼴찌로 낙인찍혀 온 우리 대구에서, 고위 공무원들만은 퇴직 후에도 부와 권력을 줄기차게 향유하고 있다니!
교육청도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한다. 퇴직 고위간부들이 끊임없이 관련 기관에 재취업을 한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방과후학교 운영업체에도 재취업하여 시장의 1/3을 점유했다는 소식이다. 보통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연금을 받으면서, 또 다시 그렇게 돈벌이를 해야 하나? 탐욕의 끝을 보는 듯하다.
전관예우는 부패의 상징이다. 같은 관청에서 상하 동료로 근무했던 공무원들이 선배는 퇴직후 관청에 로비를 하는 신분이 되고, 후배는 행정권력을 활용하여 선배의 청탁을 들어준다. 어찌 단순한 '인정'만 오갈 것인가?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는 무너지고, 모두들 연줄과 뇌물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데 골몰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경제 규모는 세계 11위 수준이지만 청렴지수는 매년 45위 안팎에 머물러 부패국가로 낙인찍힌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은 언제나 경전을 읽고 예술 창작에 몰입했다. 그들은 세상에 도가 있으면 나아가 벼슬을 하여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고, 세상에 도가 없으면 자연으로 돌아가 수양하는 삶을 살았다. 따라서 경전 탐독과 연구는 당연한 일이었다. 보통국민들의 몇 배나 되는 연금을 누리며 유유히 살아가는 고위 퇴직 공무원들에게 '이제 시간이 많아졌으니 양서를 읽으면서 수양을 하라'는 말이라도 하고 싶다.
또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좀 길러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사대부들이 예술 창작에 몰입한 것은 경전만으로는 인간의 길을 깨치는 데 부족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경전 탐독을 통해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과, 실제로 자신의 마음과 생활이 자연의 순리에 부합하는 것은 일정 부분 다른 일이므로, 그들은 직접 그림을 그리고 음악과 문학을 창작하는 데 열중했다. 쉽게 말하면 그들은 나뭇잎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직접 그려보는 체험을 경전 탐독으로는 미처 체화하지 못했던 수양의 높은 경지에 스스로를 도달하게 해주는 길로 여겼던 것이다.
전관예우는 건전한 세상의 도를 없애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인간다운 삶인가를 고민하며 자라야 할 청소년들에게 이익만 되면 무조건 챙기는 극단적 이기주의자들이 더 잘산다는 전형을 보여주어서는 곤란하다. 자기성찰에 철저했던 사대부들도 도가 없는 세상에서는 자연으로 돌아가 사는 것이 옳다고 믿었는데, 겨우 공부의 문턱에 있는 청소년들이 사회를 탓하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하는 사회라면 애초에 인성교육은 불가능하다.
돈과 권력이 보이면 먼저 잡으려고 범죄에도 뛰어드는 공직자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배는 가라앉고, 죄 없는 아이들이 죽는다. 소수의 특별사람들이 대다수 보통사람들을 희롱하는 오늘, 더욱 예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연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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