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1일은 이른바 '칠곡 계모 치사' 사건의 선고공판이 있었던 날입니다.
칠곡 계모 사건은 그 범행의 양상과 결과가 매우 중한 것이어서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선고 당일 언론과 시민들의 시선이 모인 법원은 긴장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필 그날은 제가 맡은 재판부의 재판기일이기도 했습니다. 법정동 밖에서 방청객들이 외치는 '사형', '사형'하는 고함을 들었습니다. 오전 재판을 끝내고 나서 선고결과를 확인했습니다. 역시 법원에 대한 분노와 비난 일색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결과를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생겼습니다. '법원에서 적정하다고 판단한 양형과 일반 국민들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형량의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사법불신을 해소하고 법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하는 평소의 고민이 더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보고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미국, 독일, 일본의 만 20세 이상 60세 미만의 남녀를 대상으로 살인, 강간, 절도죄 등과 관련해 범행 여부가 불확실한 사건의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유'무죄 판단, 피고인이 범인일 확률, 형량, 범죄 피해의 심각성 인식 등을 조사한 연구결과는 우리 국민들이 가지는 법 감정의 특수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가장 높은 유죄 판단 비율을 기록하고, 범행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도덕적 비난 가능성도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형량 판단에서도 미국 다음으로 높게 나타난 반면 합리적 의심 기준, 사법부에 대한 신뢰조사에서는 가장 낮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위 보고서는 '우리 국민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 사건이 도덕적으로 비난할 만 하다고 생각할 경우 범인일 가능성을 높게 판단했는데 이는 사건 판단에 있어서 정서적인 단서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우리 국민의 특성이 우리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낮은 이유 중 한 요소가 된다고 결론 내리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법원 구성원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법권의 본질이 재판인 것을 감안할 때 아마도 사법 불신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재판 잘하는 법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그 전제로 법원과 재판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사법작용에 대한 신뢰를 얻어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법원에서는 이러한 의미에서 '충실한 재판', '투명한 사법',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사법의 인권감수성과 국민편의성 제고'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대법원 차원에서는 양형심리의 충실화를 위한 노력, 법정 녹음, 판결서 공개, 전자소송의 확대시행, 사법부의 독립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법원의 모든 영역을 공개하고 국민들이 사법행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소통 프로그램의 운영 등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구지방법원에서도 법관들의 자질 향상을 위한 각종 연수 프로그램 실시와 함께 시민사법위원 위촉, 초'중'고 학생들의 상시적인 법정 견학, 가족이나 친지 등의 법원 초청을 통한 법정 모니터링, 지역 변호사회와의 간담회, 무기명 상시 법정설문조사 등을 통해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4월 25일은 국민의 준법정신을 앙양시키고 법의 존엄성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제정된 법의 날입니다.
법의 날을 맞이하여 법원 구성원들은 법원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더욱더 엄격해지고 법관의 자질에 대한 기대수준도 점점 높아짐을 잘 느끼고 있습니다.
당장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재판을 잘하는 법원, 경청하는 법원, 신뢰받는 법원이 되기 위한 법원의 고민과 노력을 기억해주시고, 인내심과 애정을 가지고 격려하고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서영애 대구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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