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생존 기대 꺾인 실종자 가족들 분노

입력 2014-04-21 10:20:11

"바다 속에 내 아이 있는데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어"

세월호 침몰 닷새째인 20일, 실종자 가족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실종자 가족들은 "차갑고 숨 쉴 곳 없는 바다 속에 내 아이, 내 가족이 있는데,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며 정부를 향해 거센 분노를 폭발시켰다. 소식이라곤 싸늘하게 식은 시신 인양 관련뿐이어서 실종자 가족의 속은 까맣게 타 버렸다. 더딘 구조에 대한 항의가 무력한 수색에 대한 원망으로 바뀐 것이다.

20일 오전 10시쯤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군내북초등학교 인근 왕복 2차로 도로. 실종자 가족 100여 명이 실내체육관에서 나왔다. "이대로 두고 볼 수만 없다"며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로 향하는 발걸음이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눈은 충혈됐으며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경찰 300여 명이 겹겹이 줄을 맞춰 이들 가족을 포위했다. 몇몇 가족이 저지를 뚫으려고 하자 경찰은 4, 5겹으로 다시 가족들을 둘러쌌다. 경찰은 소형 카메라 대여섯 대를 들이대며 채증을 했다. 끝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가족의 눈은 물기로 젖었다. 몇몇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쉰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단원고 2학년 1반 A양의 어머니는 "시신이 나올 때마다 하루하루 심장이 쪼그라든다. 내 아이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때 당장 배를 들어 올려 달라. 이러다가 바닷물에 쓸려가 잃어버릴까 겁난다"며 "구조에 대한 청와대의 확실한 의지를 듣고 싶다"고 했다.

실종자 가족의 정부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19일 오후부터 일기 시작했다. '살아 있을 것이다'는 실낱같은 희망에 가슴 속 응어리를 꾹꾹 눌러놨던 실종자 가족은 이날 오후 6시쯤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열린 해양경찰의 설명회 뒤 분노가 가슴을 뚫고 나왔다.

이 자리서 해양경찰 측은 세월호 뱃머리 부분이 수면 10m 아래까지 가라앉았고, 선체도 좌현으로 50~70도 정도 기울었다는 이야기를 가족에게 전했다. 허탈함을 감추기도 전에 수색에 참여한 잠수사들 사이에서 비관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배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는 건 공기가 빠지면서 그만큼 부력이 없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공기가 빠져나오면서 같이 밀려나온 시신이 전날부터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들이 들렸다.

더는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가족들은 초조했고, 가슴은 더욱 타들어갔다. 이윽고 20일 0시쯤 선체 창문을 깨고 들어간 잠수부에 의해 선실에서 3구의 시신이 물 밖으로 나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구조 작업이 시작된 뒤 처음으로 선실 내 시신 발견에 가족들은 주저앉았다. "정부는 뭘 했나." 가족들은 격앙됐다. 가족은 이날 오전 3시쯤 진도체육관을 찾은 정홍원 국무총리를 막아서며 무능한 정부를 원망했다. 그리고 가족 100여 명은 청와대로 나서려고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경찰의 저지로 7시간 가까이 발목이 잡혀 끝내 청와대로 향하지 못했다.

진도에서 서광호 기자 kozmo@msnet.co.kr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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