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미어져 눈물만…" 집단 트라우마 빠진 대한민국

입력 2014-04-19 09:21:22

"남의 일 같지 않다" 모두가 피해가족된 듯…슬픔·우울 호소 잇따라

18일 밤 전남 진도군 팽목항 실종자 가족 지원 상황실에 모인 실종자 가족들이 해양경찰청 관계자의 구조 상황 브리핑이 끝나자 당국의 대처가 미흡하다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진도에서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18일 밤 전남 진도군 팽목항 실종자 가족 지원 상황실에 모인 실종자 가족들이 해양경찰청 관계자의 구조 상황 브리핑이 끝나자 당국의 대처가 미흡하다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진도에서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연일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관련 소식이나 영상을 보면서 자꾸만 눈물이 나오고 가슴이 먹먹해져요."

시민들이 집단적 트라우마(정신적 충격)에 빠졌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사흘째가 지났지만 아직 270여 명 실종자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면서 슬픔과 가슴 통증, 우울함 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사고 당사자가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번지는 것이다.

직장인 이종구(51) 씨는 아침에 신문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 씨는 "눈물을 흘린 적이 정말 오랜만이다. 그만큼 실종자 가족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며 "고등학생 아들이 있는 처지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아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공무원 김성국(49) 씨는 "TV 등 언론에 나온 실종자 가족들 모습이나 표정이 자꾸 떠오르고 그들의 아픔이 느껴져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며 "이제는 TV 보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했다.

온종일 우울함이나 무력감을 겪는다는 이들도 많다. 직장인 서인혜(38'여) 씨는 "참사 이후 온종일 마음이 우울하다. 며칠 동안 웃어본 적이 없고 멍하게 지낸 것 같다"며 "이번 사고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지켜만 봐야 한다는 측면에서 무력감도 많이 느낀다"고 했다. 주부 박주영(35) 씨는 "언론에 나오는 소식들을 접하면서 '선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사고 대처를 저렇게 허술하게 할 수 있나 의문스럽고 며칠 동안 기분이 우울하고 화도 많이 나서 제대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TV 등을 통해 연일 충격적이거나 슬픈 장면이 반복되면서 일반 시민들도 사고 당사자와 비슷한 수준의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수많은 단원고 학생들이 세월호에 갇혀 있는 것을 생각하면 중'고등학생을 둔 부모들은 마치 자신의 자녀가 그런 것처럼 감정이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마음과마음정신과 김성미 원장은 "지난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사회적 공감대가 크고 밀접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런 집단적 트라우마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심할 경우 일반 시민들도 이번 사고 실종자 가족이나 생존자들이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 수준을 겪을 수 있다"며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이 오래갈 경우 정신과적 치료를 받을 필요도 있다"고 했다.

※외상후 스트레스=죽음을 가져올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나 사고를 경험한 뒤 반복적으로 사고를 떠올리거나 꿈을 꾸면서 심한 고통을 겪는 증상을 말한다. 우울함이나 불안, 분노 등의 장애를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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