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빌 마르티노프(1946~2004). 1996년 1월 부임한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첫 외국인 상임지휘자다. 100㎏은 됨직한 거구와 부리부리한 눈에서 나오는 카리스마가 굉장했다. 첫 외국인 지휘자였던 만큼 뒷이야기도 많았다. "연습 때마다 호통을 쳐 지휘자와 눈이 마주칠까 겁난다"면서도 "뭔가 충만한 느낌에 어느 때보다 연주가 즐겁다"고 할 만큼 단원들의 만족도가 컸다. 당연히 연주도 좋았다.
그러나 그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다. 영어를 못해 통역이 필요했고, 우리나라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행정의 제재를 받고 단원이나 여론과 적당히 영합해야 하는 '시립'(市立)의 특성을 몰랐다. 오로지 음악만 잘 만들면 되는 줄 알고 있었고, 실제로 그 일에만 집중했다.
그로서는 이러한 태도가 당연했다. 엘리트 과정을 거쳐, 단원 해촉권까지 포함해 전권이 상임지휘자에게 있는 사회주의체제 교향악단 분위기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과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키릴 콘드라신에 사사했다. 애호가들에게는 레닌 필이란 이름이 더 친숙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에서 상임지휘자 예프게니 므라빈스키를 보좌하는 부지휘자를 지냈다. 므라빈스키와 콘드라신은 두말할 필요 없는 거장이다. 특히 므라빈스키 음반은 1970년대 후반까지 적성국(敵性國)이던 러시아 음반제작사 '멜로디아'에서 발매됐다. 이 때문에 수입이 안 돼 이들 음반을 구하려고 동분서주한 애호가가 많았다.
마르티노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림스키코르사코프 국립음악원 교수였고, 2개 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였다. 이런 그에게 대구시향은 자신이 맞춰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끌어가야 할 어떤 것이었다. 당연히 단원과 충돌했다. 언어'문화 장벽과 폭언 문제로 대구시향은 늘 시끌벅적했고, 단원 실기 평정 결과에 따른 잡음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1997년 여름, 대구시향 최초의 외국 공연이 될 뻔한 중국 순회공연 계획이 무산됐다. 단원들은 사전 협의가 없었고 연주 일정이 무리라는 등을 이유로 반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사임 의사를 밝혔다. 당시 사택인 달서구 월성동의 한 아파트에서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연주 잘하는 시향보다는 말썽 없는 시향을 원하는 대구시도 그와 재계약할 뜻이 전혀 없었다.
마르티노프의 재임은 만 2년이었지만, 그가 대구시향을 음악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점은 지금도 별 이견이 없다. 아직도 많은 전'현직 단원들은 연습 때마다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던 그의 열정적인 모습을 기억한다. 한 전직 수석단원은 그에 대해 "오로지 음악에 미친 것 같았다"며 "모두 의욕에 넘쳐 시향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고조됐다"고 그때를 기억했다. 이후 보구슬라브 마데이(1999~2001), 박탕 조르다니아(2002~2004)와 같은 유명 외국인 지휘자가 잇따라 대구시향에 부임할 수 있었던 것도 마르티노프의 음악적 성과가 낳은 흐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조르다니아 이후 10년 만에 다시 외국인 지휘자가 왔다. 불가리아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은 독일이고, 지금 사는 곳은 이탈리아라는 다소 복잡한 올해 59세의 줄리안 코바체프다. 며칠 동안 연습 호흡을 맞춘 단원들은 새 상임지휘자에 대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는 단원과의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강조하며 "대구시향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코바체프의 대구시향은 내일(11일 오후 7시 30분, 대구시민회관 그랜드 콘서트홀) 관객과 처음 만난다. 코바체프는 첫 만남의 취임 연주회 곡을 모두 차이콥스키 작품만으로 골랐다. 또, 올해 말까지의 예정 연주곡 가운데 교향곡은 프로코피예프, 모차르트, 쇼스타코비치, 슈베르트, 드보르자크의 곡으로 채웠다. '미완성' '신세계에서' 등 마니아가 아니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대표 교향곡들이다.
마르티노프는 강렬했고, 마데이는 절제된 정제형이었다. 조르다니아는 명성만큼 실력을 보이지 못했지만, 이 둘의 중간쯤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코바체프의 대구시향은 분명히 다른 모습일 것이고, 그렇게 변할 대구시향의 색깔을 관찰하는 일은 분명 즐거운 일일 것이다. 17년이 지났어도 마르티노프를 추억하듯 코바체프도 오래 추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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