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문화 선각자 허순구

입력 2014-04-09 11:08:47

대구의 문화 선각자 서봉(曙峯) 허순구(許珣九, 1903~1978)를 아십니까? 서봉은 기업인으로 출발하여 대구에서 풍류방을 운영하며 전통 음악계에 아주 소중한 악보와 악기를 다량 남겼다. 활동의 근거지는 대구 동촌 통천사와 담을 나란히 한 금호정(琴湖亭)이다.

서봉의 자취는 지난해 10월 영남대에서 열린 한국정가학회 학술세미나에서 국립민속국악원 이숙희 박사가 '서봉 허순구의 생애와 풍류'에 대해서 발표하면서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통 음악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서봉을 위해 맏아들 허병기(골덴텍스 신화를 창조한 제일모직 건설 주역, 동탑산업훈장)는 지난 1960년에 동양 악기사를 창업하여 악기 국산화로 아버지의 뜻을 따랐고, 차남 허병천(국제금융전문가)'3남 허병하(우신시스템 대표이사, 은탑산업훈장)는 이동복 전 국립국악원장'이숙희 박사의 해제를 붙인 '서봉 국악보'를 새로 엮어냈다.

'서봉 국악보'를 낸 서봉의 삶은 3단계로 나뉜다. 초반 40년은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호암 이병철의 둘째 누나 이분시와 결혼한 뒤, 진주 문성당 백화점을 성장시키던 때다. 다음 20년은 호암과 손잡았던 시기다. 이때는 호암과 삼성상회를 같이 운영하거나 6'25때 화재로 파산지경에 이른 삼성물산공사에 재기자금을 대주거나 풍국주정공업㈜을 세워 돈을 벌던 시기다.

마지막 이순을 전후한 약 20년간 서봉은 기업활동을 접었다. 대신 금호강 절경에 금호정을 짓고 정악 즉 풍류를 즐겼다. 정경태로부터 시조창과 거문고를 전수받고, 추산 전용선으로부터 단소를 배웠다. 온유돈후한 우리 가곡과 시조는 서봉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거문고와 양금을 뜯으며 즐기는데 그치지 않았다. 악보'악기'음원을 유품으로 남겼다. 서봉이 남긴 악보는 가곡과 영산회상 필사본으로 유일본이다.

전국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국악 콘텐츠를 남겼다. 문화융성 시대, 풍류객 서봉이 활동한 대구 금호정을 복원'활성화하고, 그곳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 정가를 후대들에게 체험하도록 하면 어떨까. 금호강 금호정에서 울려 퍼질 평화롭고 깊이 있는 정악은 속도전'정보전'물질전에 머리 어찔한 현대인들의 피로를 풀고 심신을 맑게 하는 문화적 묘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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