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Track' 기록으로 본 라이온즈] (21)10년만에 세이브 왕 노리는 임

입력 2014-04-09 09:12:37

미·일 프로야구 섭렵…친정에 온 '원조 수호신'

'끝판대장' 오승환(32)은 일본 출국 전 인터뷰에서 "삼성에 내 빈자리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존 선수들이 자신의 자리를 잘 메울 것이라는 '격려'였지만 어쩌면 그의 '예언'이 4월부터 맞아떨어질지 모를 일이다. 오승환이 2005년 입단 이후 줄곧 형처럼 따랐던 '원조 수호신' 임창용(38)이 돌아왔다.

2007년을 끝으로 국내 무대를 떠났던 임창용은 8일 삼성 1군 훈련에 합류했다. 11일부터 벌어지는 SK와의 홈 3연전이 국내 복귀전이 될 예정이다. 그가 왕년의 한'일 프로야구 최고 마무리다운 활약을 보여준다면 삼성의 통합 4연패 가능성은 커진다.

광주진흥고를 졸업하고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에 1995년 입단한 임창용은 신인 시절부터 '풍운아'였다. 첫해 14경기에 나와 2패만을 기록했지만 이듬해 7승 7패를 거둬 단숨에 유망주로 떠올랐다. 이어 1997년 14승 8패 26세이브(다승 3위 세이브 4위), 1998년 8승 7패 34세이브(세이브 1위)의 빼어난 성적을 거둬 '창용불패'라는 멋진 닉네임을 얻었다.

1996년과 1997년 해태의 한국시리즈 우승 중심에 있었던 임창용은 1998년 12월 양준혁'곽채진'황두성과의 1대3 트레이드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대구와 광주를 대표하는 특급 타자와 투수가 포함된 초대형 거래여서 당연히 화제였다. 당시 정신적 충격이 컸던 양준혁은 기자회견을 자청, 미국에 진출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트레이드 거부 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운드 보강에 심혈을 기울인 삼성의 바람대로 임창용은 맹활약을 이어갔다. 1999년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13승 4패 38세이브(세이브 1위), 2000년에는 5승 4패 30세이브(세이브 3위)를 수확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선발로 나서 14승, 17승, 13승을 차례로 거두며 삼성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고 2004년에는 2승 4패 36세이브로 다시 한 번 세이브왕을 차지했다. 임창용이 삼성으로 돌아오면서 등번호 '37'을 후배 허승민(28)으로부터 양보받은 것도 해태 시절 달았던 번호이자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2001~2004년 사용했던 백넘버여서 애착이 컸던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성과 임창용 사이에 달콤한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단과 마찰이 적지않았다. 김응용 감독이 취임,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던 2001년에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귀국 조치라는 '징계'를 받았다. 전년 2억원에서 1억8천만원으로 연봉을 삭감하겠다는 구단 방침에 반발해 연봉조정을 신청하고 훈련을 거부한 데 따른 것이었다. 또 선동열 감독이 첫 지휘봉을 잡은 2005년에는 FA 자격으로 2년간 18억원에 계약한 뒤 몇 시간 만에 계약 파기 및 트레이드를 요구해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임창용은 국내 통산 104승 66패 168세이브, 일본 통산 11승 13패 128세이브의 대단한 성과를 남겼다. 일본에서는 '미스터 제로'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마무리투수의 특성상 아쉬움을 남긴 경기가 더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1999년 3승1패로 앞선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선 펠릭스 호세에게 9회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을 맞았고, 일명 '호세 방망이 투척 사건'이 벌어진 7차전에서는 대타 임수혁에 9회 동점 투런포를 맞아 팬들을 실망시켰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과의 결승전에선 3대3으로 맞선 연장 10회 2사 2, 3루에서 스즈키 이치로에게 통한의 2타점 적시타를 맞은 아픈 기억도 있다. 당시 대구에서는 임창용의 정면 승부를 두고 동네 선후배가 말다툼을 벌이다 폭행으로 입건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입단 당시 언더스로였던 임창용은 프로에 와서 사이드암으로 바꿨다. 선발과 마무리도 자유자재로 오갔다. 일본을 거쳐 미국 프로야구까지 섭렵했다. 진정한 '트랜스포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임창용은 국내 복귀 기자회견에서 "삼성에서 은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무도 모른다"며 미소 지었다. 내년에 한국 나이로 불혹이 되는 평생을 '도전'으로 일관한 임창용이기에 팬들의 기대는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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