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이 춤추도록 내버려 두었다"…남석 이성조 희수기념전

입력 2014-03-28 07:12:04

이성조 작
이성조 작
이성조 작
이성조 작

원로 서예가 남석 이성조 희수기념전 '우주창조-광령(光靈)'이 4월 1일부터 13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남석 서예 화풍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신선한 충격파를 던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묵록(墨綠) 60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지만 서예 작품은 하나도 출품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선보일 작품들은 이 작가가 신들린 사람처럼 다년간 작품 활동에 몰입한 결과물이다. 60년 동안 일관되게 이루어졌던 필묵의 작용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형태를 띠고 있다.

'파격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이번 전시 출품작들은 7년 전 이 작가의 고희전이 단초가 됐다. 2007년 그는 120m의 병풍을 선보였다. '묘법연화경' 전7권, 6만9천384자를 168폭의 병풍에 담은 이 작품은 3년여 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작업에만 매달린 끝에 탄생시킨 역작이었다. 하지만 고희전 이후 작가 인생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명 위기까지 가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젊은 시절 서예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의문으로 때때로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지만 전통 서예의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서예니 그림이니 하는 구분은 진리를 향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빠졌던 눈이 거짓말처럼 열렸고 아무 생각 없이 붓이 노래하고 춤추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는 화선지에 동그라미만 그렸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1년 반 동안 동그라미를 그리다 보니 하나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상 과정 없이 붓을 들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조형들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신비로운 이미지들이었다. 한국화인지 서양화인지 장르를 구분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조형 언어로 표현된 작품들은 이 작가에게 새로운 창작 활동을 위한 도화선이 됐다. 그렇게 그는 111점의 작품을 거침없이 제작했다.

이번 희수기념전의 주제인 '우주창조-광령'은 이 작가의 작품 경향과 탄생 배경을 집약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는 "어두침침했던 눈에 빛이 들어오면서 머릿속이 환해져 희열과 무아지경 상태에서 붓을 놀렸다. 이성적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지만 절대적인 존재가 나를 이끈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전시 이름을 광령이라 명명했다"고 설명했다.

'우주창조'는 그의 작품을 해석해 주는 단어다.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원자구조,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세포, 우주에 떠 있는 군성(群星) 등 다양한 해석이 제기된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이 작가는 "마음 가는 대로 그리다 보니 나도 설명할 수 없는 작품이 만들어졌다. 지금 내 작품을 봐도 내가 그린 것 같지 않다. 작품을 본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보면 작품이 내뿜는 기는 우주의 기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확대해서 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확대하면 그림이 깨진다. 하지만 이 작가의 작품은 밀도가 촘촘해 확대해서 보면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이미지가 나타난다. 마치 우주가 생명체를 품고 있듯 그의 작품 속에는 작은 생명체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는 독특한 작업 방식과 연관이 있다. 이 작가는 뾰족한 끝을 잘라내 평평하게 만든 붓과 이쑤시개, 나무젓가락, 면봉 등을 이용해 세밀한 그림을 탄생시켰다. 그는 일반적이지 않은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도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작업 도중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 했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를 신작 발표회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판매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이 작가는 "처음에는 전시 자체를 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시대의 산물이라는 생각에 작품을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전시 작품에 가격을 매겨 판매하는 것은 신령스러운 힘을 준 존재에 대한 모독이다. 또 111점은 거대한 작품을 이루는 하나의 퍼즐 조각 같은 느낌이 든다. 퍼즐의 경우 1개라도 없으면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작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정진하는 스타일의 서예가다. 예인은 몸에서 '묵향'이 나도록 먹을 갈고 붓을 놀려야 한다는 말을 지금도 시행하고 있다. 그는 지금 "절대자는 왜 나에게 이런 작품을 하도록 이끌었을까?"라는 화두를 품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던져진 화두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최근 1호짜리 부적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40여 점 완성된 부적 작품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적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노년의 나이에 새로운 화두를 안게 된 원로 서예가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053)420-8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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