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름답게 떠나는 하춘수 리더십

입력 2014-03-22 07:29:55

DGB 금융지주가 21일 오전 대구은행 본점 강당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하춘수 회장 시대를 마감하고, 제11대 박인규 회장 겸 대구은행장 시대를 열었다. 1967년에 창립된 전국 최초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의 47년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광석화처럼 순식간에, 철저한 준비로 물 흐르듯이 순리적 바통 터치가 이뤄졌다.

모 대학 동문 압력설이나 대구은행 내부 최대 계파를 이루고 있는 특정고 동문들의 압박설, 금감원 간섭설, 지역 유력 인사 외압설 모두 터무니없는 일이다. 1971년 행원으로 입사한 후, 스스로 대구은행 문을 나서기로 결심하기까지 '발로 뛰는 행장' 'KTX 안에서도 달리는 행장' 등으로 불렸던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이 순수하게 조직과 후배를 위해, 그리고 DGB 금융지주 회장과 대구은행장의 임기 미스 매칭을 동일하게 하기 위해 과감한 용퇴 결정을 내렸다.

하춘수 전 행장은 사실 소리 소문 없이 일 년여 전부터 용퇴에 뜻을 두고 준비해왔다. 차기 행장감을 2배수로 압축하고, 본인들에게 장점과 단점을 들려준 뒤, 약점을 보완하도록 요구했다. 본인의 사퇴 의사를 표면화한 다음 날 바로 행장추천위원회를 통해 박인규 차기 은행장을 내정했다. 끼어들기나 인사 압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거침없이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하춘수 전 행장은 대구은행 안팎에서는 '10년 행장' 자리를 닦아놓았다고 할 정도로 탄탄한 기반도 다져두었다. 그러나 창립 반백 년을 앞둔 DGB 금융지주와 대구은행의 비상을 위해 용퇴 결단을 내렸다. 지난 2월, 하춘수 행장의 '자발적 사퇴' 통보에 금감원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대구 남자로 불리는 인사도 '사퇴하지 마시라'는 문자를 통해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하춘수 전 행장은 대구를 당분간 떠날 예정이다. 대구에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으면 후임 행장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배려 때문이다. 후임 박인규 대구은행장이 맘껏 경영에 전념할 수 있게 하려는 소신의 표현이다.

주총을 마치고 이임한 하춘수 전 행장은 가벼운 마음으로 혼자 '자비의 집' 무료 급식소를 찾아가 금일봉을 전달했다. 쉽지 않은 일인데 웃음을 잃지 않고, 미련 없이 해내고 있다. 그래서 하춘수 전 행장이 떠나간 자리에 '하춘수 리더십'이라는 꽃이 피어나고 있다. 어른은 없고, 자리다툼만 잦은 대구 사회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아름다운 일로 오래 기억되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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