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저희도 미치겠다"는 규제 끝장토론, 국민은 어떨까

입력 2014-03-21 11:04:38

공직 사회 규제 손수건 돌리기 으름장으론 한계, 무분별한 의원입법도 규제 뒷배 된 &

제1차 규제 개혁 장관회의 겸 민관 합동 규제 개혁 점검회의가 20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TV로 생중계된 이날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마이크를 바짝 당겨 7시간 동안 끝장토론을 이끌며 '규제 혁파'를 강도 높게 주문했다.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60여 명의 중견'중소기업 경영자와 자영업자도 참석해 현장의 불만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규제 혁신 없이는 국가 미래가 없다는 각오가 피부에 와 닿을 만큼 분위기는 진지했다.

대통령은 중간 중간 "잠깐만요" 하면서 장관 말을 끊고 실태와 방안을 묻는 등 질책성 발언을 쏟아냈다. "보신주의에 빠져 국민을 힘들게 하는 부처와 공무원에게 책임 묻겠다" "훔치는 것만 도둑질이 아니라 규제 개혁을 거부해 청년 일자리를 뺏는 것도 도둑질" 등 강한 어조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할 것을 지시했다.

현재 등록된 중앙정부 규제만도 1만 5천269건이다. 지자체 규제까지 합하면 국민은 규제의 홍수 속에 산다. 시급한 규제부터 풀어 임기 내 2천200건을 줄이고 규제비용총량제, 네거티브제, 일몰제 등을 도입하는 한편 공무원의 규제 개혁 성과를 평가해 인센티브나 책임을 묻기로 하는 등 각종 방안들이 제시됐다.

무분별한 의원입법에 대한 비판과 견제책도 쏟아졌다. 하지만 규제를 풀 이유보다 규제할 구실부터 찾는 공직 사회의 분위기 등 대대적인 변신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토론 끝, 규제 시작'만 되풀이될 뿐이다. 재료와 레시피만 잔뜩 꺼내놓고는 정작 요리할 생각도, 칼도 갈아놓지 않은 꼴 아닌가.

역대 정부가 규제 개혁을 외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정부 내에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해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지는 시간이 말해주고 두고 보면 알 일이다. 끝장토론 한 번 하고 장관들 다그쳤다고 중앙이나 지방 공무원들이 벌벌 떨며 규제를 확 줄일 것이라고 믿는다면 순진한 발상이다.

이날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얼마나 답답했는지 "저희도 미치겠다"고 하소연했다. 물어보나 마나 이중삼중 규제의 그물 때문에 될 일도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장관이 이럴 지경인데 국민들은 오죽하겠나. 규제 시스템 전체를 꿰뚫어보고 끝장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박근혜정부도 역대 정권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창문도 열지 않고 아무리 먼지 털어봐야 시간 지나면 다시 먼지가 고스란히 방 안에 쌓이는 법이다.

기업, 국민이 규제의 황사를 온통 뒤집어쓰기 전에 규제와의 치열한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 또다시 성과 없이 머뭇거리거나 공무원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다면 대한민국은 '규제의 갈라파고스'로 영원히 고립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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