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 향긋한 미나리와 삼겹살의 만남 '봄나물의 유혹'

입력 2014-02-27 14:16:53

봄의 전령사

봄은 어디서 오는가? 봄은 여인의 화사한 옷차림에서 온다. 봄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따스한 봄빛을 맞으려 봄나들이를 간다. 개나리·진달래 등 봄꽃이 보고 싶고, 봄나물을 캐는 아낙네의 모습도 정겹다. 봄이 되면 겨울을 이겨낸 싱그러운 봄나물이 입맛을 유혹한다.

◆청도 한재 미나리

미나리는 봄의 미각을 깨우는 맛의 전령사다.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주부들을 유혹한다. 전국의 미나리 중 경북 청도의 한재 미나리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손꼽힌다. 청도읍 평양리를 중심으로 주변 마을까지 확산한 한재 미나리는 봄철의 대표 별미로 사랑받고 있다. 지난주 미나리 향이 가득한 청도 한재 마을을 방문했다. 청도군청에서 밀양 방면으로 15분쯤 달리면 '한재 미나리 단지'라는 큼지막한 간판이 보인다. 한재 골로 올라가는 길 초입부터 비닐하우스 바다가 펼쳐진다. 투명한 비닐 사이로 푸릇푸릇한 미나리의 모습이 비친다.

한재 미나리 생산단지는 청도읍 초현리, 음지리, 평양1·2리, 상리 일대다. 한재 미나리의 특징은 향기가 강하다는 것이다. 한재 미나리 작목반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화악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지하수로 한겨울에 미나리꽝에 물을 대 초봄부터 미나리를 재배해 향이 깊은 미나리를 생산해낸다. 한재 미나리 재배면적은 90ha. 130가구에서 연간 1천t의 미나리를 생산해낸다. 연간 매출은 70억~80억원 선이다.

청도 한재 미나리 작목반 이경호(52) 총무는 "한재 마을은 1992년 도랑에서 키우던 미나리를 논에 옮겨심으면서 미나리 마을로 특화하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한재 미나리는 2월 초부터 수확을 시작한다. 올해는 2월 1일 시작해 4월 말까지 채취할 계획이다. 이 총무는 "성급한 사람들은 1월 말부터 찾아오기 시작한다"며 "최대 성수기인 3월 말쯤에는 전국에서 단체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와 주말엔 통행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차량정체 현상이 빚어진다"고 말한다.

이 총무의 소나무 농장 작업장에는 부인 윤승란(48) 씨가 흐르는 맑은 물에 풋풋한 미나리를 연신 씻어내지만, 물량이 달린다. 포장하는 즉시 손님상과 인근 식당으로 불티나게 팔려간다. 윤 씨는 "새벽 6시부터 오후 늦도록 쉬지 않고 작업하면 하루 270㎏ 정도 생산할 수 있지만, 요즘은 현장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팔 물량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설명한다. 전국에서 택배주문이 쏟아지지만 돌아볼 겨를이 없다.

◆미나리와 삼겹살의 별미

한재 미나리의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현장에서 먹는 맛이 최고다. 미나리 작업장 안 비닐하우스에서 금방 씻은 싱싱한 미나리와 삼겹살 쌈을 즐기는 맛에서 봄이 느껴진다. 평양1리 소나무 농장 작업장 안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미나리를 즐기는 50대 남성팀을 만났다. 부산에서 온 유세열(57·부산시 사상구 학장동) 씨는 "한재 미나리의 특징은 아삭아삭하면서 특유의 향기가 나 전국 최고"라며 "4, 5년 전부터 계속 찾아오는 단골"이라고 말한다.

이상문(64·부산시 사상구) 씨도 "매년 이맘 때쯤 동료들과 한재 마을에 미나리 먹으러 오는 일이 관례처럼 됐다"며 "오늘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물량이 모자란다는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미나리 몇 단을 주문해서 영천 처가에 선물했다"고 자랑한다. 이성갑(60) 씨도 "부산에서는 회를 즐기지만, 매년 이맘때는 친구들과 한재 미나리를 즐기는 봄나들이를 한다"며 "밀양에서 삼겹살과 목살을 풍성하게 준비해서 올라왔다"고 말한다.

김용수(60) 씨도 "한재 마을은 밀양과 인접해 있어 오히려 대구나 경북지역보다 부산에서 오기가 더 수월하다"며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 남짓하면 한재 골에 도착할 수 있어 부산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설명한다.

◆한재 미나리 즐기기

한재 미나리는 보통 40∼50㎝ 정도 크기다. 다른 고장의 미나리와는 달리 밑단이 붉은 것이 특징이다. 한 줄기 베어 물면 아삭하게 씹히며 향취가 입 안에 가득하다. 3월이 되면 향취가 더욱 강해진다. 한재 미나리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3월 중순쯤 생산단지인 한재 마을을 직접 방문해 미나리 생산현장 분위기 속에서 맛을 음미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한재 마을은 요즘 모든 식당이 성업 중이다. 중심지인 평양 1·2리 주변에는 대형 식당이 즐비하다. 식당 마당마다 차량들이 빽빽하다. 미나리 작업을 하는 비닐하우스로 직접 찾아가는 손님들도 많다. 예전에는 현장에서 돼지고기를 판매하기도 했으나 올해부터는 불판과 상추, 깻잎 등 기본적인 것만 제공한다. 고기는 손님이 직접 준비해야 한다.

한재 미나리는 한 단에 9천원이다. 3월이 되면 한재 마을은 온 동네가 차량 홍수를 이룬다. 주말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차량으로 통행할 수 없을 정도다. 평일에도 점심부터 저녁때까지 손님들이 계속 이어진다. 차가운 물에 씻은 미나리와 뜨겁고 기름진 삼겹살이 만나 절묘한 맛을 낸다. 미나리는 아삭하게, 삼겹살은 부드럽게 씹힌다. 고기를 다 먹은 뒤에도 입안에서 미나리 향이 감돈다. 생미나리의 향을 흠뻑 즐긴 후 불판 위에 올려 구워 먹기도 한다. 모두 행복한 표정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