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뇌 수술 받은 이귀순 씨

입력 2014-02-26 07:38:34

"잃어버린 가족…홀로 사는 게 무서워요"

뇌동맥류 수술을 했지만 돌봐줄 가족이 없는 이귀순 씨가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으며 재활을 꿈꾸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감격시대 김현중 김가은' 사진. 레이앤모 제공
뇌동맥류 수술을 했지만 돌봐줄 가족이 없는 이귀순 씨가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으며 재활을 꿈꾸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앞으로 사는 게 너무 무서워요."

이귀순(52'여) 씨는 병석에 누워 하루에도 몇 번씩 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서부터 시작해 변변한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인생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뇌동맥류로 갑작스레 쓰러져 수술까지 했지만 이 씨를 찾아오는 가족은 없다. 뇌수술 때문에 기억이 온전치 않고 말도 자연스럽게 할 수 없지만 이 씨는 기댈 곳이 없다.

"너무 막막해요. 빨리 병원에서 나가고 싶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버지의 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

대구 서구에서 태어난 이 씨는 갓난아기 때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어려운 형편에 아버지는 이 씨를 고아원으로 보냈다.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부모는 이 씨를 찾으러 고아원에 다시 왔다.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었다.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아버지는 어머니는 물론 겨우 초등학생이었던 오빠와 언니, 이 씨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 씨는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매일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매일 때렸어요, 매일. 일용직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면 집에는 한 푼도 갖다주지 않고 전부 술 마시는 데만 썼어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머니가 시장에서 이것저것 팔아 우리 형제들을 키웠어요."

초등학생이던 이 씨는 몸이 약한데다 아버지에게 얻어맞기까지 하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아파서 집에 누워 있는데도 아버지의 구타는 계속됐다. 이 씨의 인생에서 가장 지옥 같았던 나날이었다.

중학교 진학도 못했다. 몸이 약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성적도 썩 좋지 않아 부모님이 진학을 포기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이 씨가 1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없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이 씨는 사회에 녹아들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이곳저곳 떠도는 외로운 삶

20대에 접어들면서 이 씨는 일할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양산 만드는 공장에 일자리를 구하고는 집에서 나와 살았다. 아버지는 없지만 아버지의 그늘이 남아있는 집에서 벗어나 살고 싶었다. 여전히 몸이 약했던 이 씨가 하는 일은 양산 부품을 조립하는 정도였다. 매일 일을 할 수 없어 월급은 방값을 내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양산 공장과 과자 공장에서 일했어요. 그런데 몸이 버티지를 못해서 몇 달씩밖에 일을 못했어요.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 계속 떠돌았죠."

이후 이 씨의 삶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항상 가족들을 때리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에 남자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결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남자를 만나고 결혼해서 사는 걸 생각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그런 생각을 막았어요. 자꾸 남자를 피하다 보니 저한테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고요."

어머니는 항상 이 씨를 걱정했다. 오빠와 언니는 결혼을 해서 잘 사는데 특별한 직업도 없이 혼자 지내는 딸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었던 이 씨는 2008년쯤 청송으로 떠났다.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가 먹고 살 만큼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소개해준 곳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곳도 청송이다. 유일하게 의지했던 어머니의 부재는 이 씨의 마음을 더 황폐하게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친구를 따라 의성으로 거취를 옮겼다.

"어차피 어디나 다 똑같았으니까요. 오빠와 언니, 남동생과는 떠돌아다니면서 서서히 연락이 끊어졌어요."

◆잃어버린 건강과 가족

이 씨는 입고 있던 옷 외에는 짐 하나 없이 의성으로 옮겨왔다. 다행히 의성에 집이 있던 친구가 함께 살자고 제안했고, 몸이 약한 이 씨를 돌봐주기 시작했다. 제2의 고향 같은 곳이 생긴 것이다.

처음으로 찾아온 평온한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이 씨는 친구의 집 화장실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이 씨는 뇌에 혈종이 발견돼 관을 통해 이를 제거하는 시술을 받았고, 입원하고 있던 중 12월에 뇌동맥류가 관찰돼 뇌수술을 하게 됐다.

수술 직후 이 씨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았다.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었고,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했다. 수술 후 2달 반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의식은 돌아왔지만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돼 휠체어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빠와 언니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소식이 없었다. 오랜 세월 연락이 끊어진 탓에 가지고 있던 연락처도 이미 바뀌어 있었다. 이 씨에게는 돌봐줄 가족조차 없어졌다.

무일푼인 이 씨에겐 병원비까지 밀려 있는 상황이다. 편마비 때문에 앞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건 사실상 어려워 생활자금도 막막하다.

"병원에서 나갈 정도로 건강이 좋아지면 의성으로 갈 거예요. 제가 아는 세상이라고는 이제 그곳이 전부니까요. 어릴 때는 아버지가 무서웠는데,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세상이 무섭네요."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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