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클래식과 하이브리드

입력 2014-02-26 07:40:36

10년 넘게 나의 발이 되어줬던 차를 바꿀 때가 된 것 같아 모 자동차회사의 시승센터를 찾았다. 연비가 좋아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골라 시승해 보았다. 하이브리드라는 말은 이처럼 자동차에 널리 쓰이지만 찾아보면 자전거, 골프채, 채권, 부동산, 식품에도 흔히 쓰이며 심지어 '하이브리드'란 제목의 영화도 만들어지는 추세에 이르렀다.

하이브리드(Hybrid)란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것을 섞어 새롭게 만드는 것으로 혼합, 혼성, 혼혈의 의미를 지니는데 음악 분야에서는 예전부터 퓨전과 크로스오버라는 말이 하이브리드와 비슷하게 쓰여왔다. 퓨전은 재즈의 거장 마일드 데이비스가 재즈와 록을 결합시키는 실험에서 시작됐다고 보는데, 퓨전 재즈의 등장은 좀처럼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클래식계에도 영향을 미쳐 1982년 플라시도 도밍고와 미국의 포크 음악 가수인 존 덴버가 함께 부른 'Perhaps love'의 발표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 테너 박인수 교수와 가수 이동원 씨가 발표한 '향수'를 크로스오버 음악의 시작이라고 본다. 그러나 국민적 인기를 모은 이 곡 때문에 박인수 교수는 당시 클래식 음악을 모독했다고 하여 국립오페라단에서 제명을 당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20년이 지난 요즘 바리톤 김동규 씨가 클래식 곡은 아니지만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란 곡으로 10월 한 달 동안은 가수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공연계의 크로스오버, 퓨전 열풍은 몇 년 전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와 같은 국제 행사에서도 숙명가야금연주단과 비보이들이 파헬벨의 '캐논변주곡'을 연주하는 것이 낯설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워졌다.

하이브리드는 온전히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보다는 이전부터 있던 것들을 재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효율성이 높다는 장점을 가진다. 비빔밥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하이브리드' 음식이며 짬짜면은 대중의 입맛과 기호를 간파한 음식업계의 '하이브리드'라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는 클래식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갤러리나 레스토랑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에서 클래식 연주자들이 대중들에게 익숙한 크로스오버 음악을 선곡하는 것은 클래식 음악을 더 쉽게 느끼고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연주자들의 노력이다. 이런 노력을 가상히(?) 여겨 음악을 함께 즐겨주는 관중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공연이 풍성해지는 봄이 온다. 2014년 들어 처음 열리는 대구시립합창단의 첫 정기연주회(3월 6일 대구시민회관)도 다채로운 음악들로 채워진다. 클래식은 물론이고 대중들이 선호하는 가요, 심지어 추억의 국민체조도 노래로 부를 예정이다. 봄이 오는 길목, 음악으로 모두가 함께 즐거워지는 무대를 기대한다.

신현욱 테너'대구성악가협회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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