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으로 장애 극복…컴퓨터 수리 전문가 맹활약
장윤혁(39'칠곡군 왜관읍) 씨는 운명적으로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모든 장애를 극복했다. 거꾸로 태어나면서 얻은 뇌성마비의 장애를 극복하고 일반인도 하기 힘든 컴퓨터 수리 가게 사장이 되었다. 인간승리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상을 받는 주인공이 됐다.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같은 이야기!
칠곡군 왜관읍사무소 옆 파란색 간판의 '프리 컴퓨터'.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컴퓨터 가게다. 하지만 사장은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장윤혁 씨다. 온종일 휠체어와 함께 해야 하는 장애인이지만, 말이 약간 어눌할 뿐 정신상태는 정상이다. 윤혁 씨 뒤에는 언제나 엄마 박상희(62) 씨가 있다. 박 씨는 뇌성마비 1급 장애를 가진 아들을 훌륭한 '컴퓨터전문가'로 키워냈다. 엄마로부터 감동스러운 '장윤혁의 일대기'를 들어본다. "윤혁이는 태어날 때 장애를 입은 후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세상의 거센 파도에 부딪혔습니다." 당시 교장 선생이 '장애인은 입학할 수 없다'고 했다. 일 년을 기다렸다. 그때 평생의 은인 김형기 선생님을 만나 우여곡절 끝에 입학했다. 엄마는 6년 동안 아침마다 업고 등교하고 수업을 마치면 업어서 돌아왔다. 마침내 감격의 졸업을 했다. 하지만 중학교 입학이 좌절됐다. 부모님이 논밭으로 일하러 나간 사이 온종일 방에서 지냈다.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오른손으로 한두 줄의 통신편지 쓰는 것을 낙으로 삼던 어느 날 '천사'를 만난다. 윤혁 씨의 형편을 안 서울 사는 누나(이혜정'약사)와 통신편지를 주고받게 된 것. 그 누나는 "컴퓨터를 배우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며 컴퓨터를 선물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윤혁 씨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컴퓨터와의 사투를 시작했다. 몇 년 후 윤혁이는 산골 마을의 컴퓨터를 고쳐주고, 가르쳐주는 컴퓨터 기술자가 되어 있었다.
◆안방 탈출! 세상 밖으로!
부모님이 일하러 나간 사이 방 안에서만 지내던 윤혁이가 세상 밖으로 나서게 됐다. 평소 몸이 불편한 윤혁이의 몸을 무료로 치료해주던 정재우 원장(왜관 원재 한의원)이 은인이다. 어느 날 정 원장은 "이 정도 컴퓨터 실력이면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와도 된다"며 자신의 여동생이 경영하고 있는 왜관 중앙통 통신가게 옆에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안방 탈출의 시작이었다. 어느 날 윤혁이가 갑상선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 기다리던 중 엄마 박 씨가 우연히 대기실 책꽂이에서 한국고용촉진공단에서 만든 '장애인과 일터'란 책을 보게 됐다. 아무 생각 없이 뒤적이던 중 '장애인도 창업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가 눈에 번쩍 들어왔다. '창업자금을 받아 무엇인가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엄마와 윤혁 씨는 함께 창업교육을 받은 후 창업자금을 신청했다. 마침내 2000년 7월 장애인 창업 자금으로 남부 버스정류장 옆에 가게를 얻어 '프리 컴퓨터'란 간판을 달았다. 몸이 불편한 윤혁 씨에게 엄마는 수족이 되었다. 윤혁 씨는 프로그램을 맡고, 엄마는 손발이 돼 부품 조립을 한다. 엄마는 세상에 소리친다. "우리 아들은 몸은 장애인이지만, 마음은 결코 장애인이 아닙니다. 열심히 독학으로 컴퓨터를 배워 이렇게 어엿한 컴퓨터 가게 사장이 되었습니다."
◆인간승리
프리 컴퓨터'에 오는 손님은 두 유형이다. 매장에 들어와 윤혁 씨의 모습을 본 후 말없이 돌아서는 사람과 "자네를 믿네" 하면서 일부러 단골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 윤혁 씨는 "요즘은 대구와 구미, 군위 등 주변 지역은 물론 서울에서도 일부러 저에게 컴퓨터 수리를 요청해오는 손님이 있다"며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경주에 있는 어느 목사님은 윤혁 씨의 사연을 알고 컴퓨터가 고장 나면 일부러 차에 싣고 와 수리를 맡긴다. 어느 날 새 컴퓨터를 산 손님이 헌 컴퓨터를 버리고 갔다. 윤혁 씨는 엄마에게 "쓸 수 있는 부품을 모아 고쳐서 컴퓨터가 절실한 장애인에게 선물하자"고 제안했다. 일반가정에서 버린 컴퓨터를 수리해 몇 달 만에 중고 컴퓨터를 한 대씩 만들었다. 10여 년 동안 생활이 어려운 150여 장애인에게 중고 컴퓨터를 선물했다. 선물을 받은 장애인들이 감사의 인사를 인터넷에 올리면서 소문이 났다. 전국에서 '컴퓨터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늘어갔다. 마침내 2002년 장애인의 날에는 '장애인을 돕는 장애인'이란 공적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어엿하게 컴퓨터 전문가로 정착, 자신의 컴퓨터 가게까지 운영하면서 못다 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정고시를 시작했다. 오른쪽 팔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몸으로 종일 공부에 매달렸다. 온몸이 마비되는 고통을 겪었다. 여동생 친구가 옆에서 도와줘 큰 도움이 됐다. 마침내 2004~2005년 2년 만에 독학으로 검정고시 중'고교 과정을 모두 마쳐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윤혁 씨는 "공부가 가장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회생활이 훨씬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세상을 극복한 컴퓨터 가게 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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