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맞춤법 중에는 국어 선생들도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부딪치다'와 '부딪히다'이다. 발음도 비슷한데다 충돌 혹은 어떤 상황에 직면함의 뜻을 가지고 있는 '부딪다'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사용을 위해서는 상황을 잘 따져 보아야 한다.
'부딪치다'는 '부딪다'에 강세를 나타내는 접미사 '-치-'가 붙어서 만들어진 파생어이다. 그래서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다', '팔을 흔들다가 옆 사람에게 부딪쳤다', '그는 불합리한 현실에 부딪쳐 싸웠다'와 같이 자신의 행위나 의지로 충돌을 하였을 경우 '부딪치다'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
'부딪히다'는 '부딪다'에 피동 접미사 '-히-'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다. 피동 접사가 붙었다는 것은 주체가 다른 힘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 즉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행위를 당함을 의미하게 된다. '배가 빙산에 부딪혀 가라앉았다'의 예에서는 배가 빙산에 충돌을 당한 것이기 때문에 '부딪히다'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 '그는 경제적 난관에 부딪혀 파산했다'에서도 자신의 의지로 난관에 직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딪히다'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 만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미국 선수가 한국 선수에 부딪쳤다'라고 한다면 미국 선수는 실격을 당하고 한국 선수는 구제될 가능성이 높게 된다. 이것을 '부딪히다'로 쓰면 판정이 반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대한 판단이 아주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피동문의 경우는 그에 대응하는 능동문이 있다. 그런데 '부딪히다'의 경우는 '그는 (한눈을 팔다가) 전봇대에 부딪혔다'를 능동문으로 바꾸면 '전봇대가 그를 부딪었다'가 되어 매우 어색해진다. 그리고 표준국어대사전의 '부딪히다'와 '부딪치다'의 항목에는 '파도가 뱃전에 부딪히다'와'파도가 바위에 부딪쳤다'와 같은 예문이 있다. 만약 파도가 정박해 있는 뱃전에 부딪는 경우라면 파도가 바위와 부딪는 것이나 뱃전에 부딪는 것이나 차이가 없기 때문에 둘 다 '부딪치다'를 써야 한다. '파도가 뱃전에 부딪히다'를 쓸 수 있는 상황은 파도는 가만히 있는데 뱃전이 파도를 치고 가는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또 '아이가 한눈을 팔다가 선생님과 부딪혔다'와 '한눈을 팔다가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쳤다'라는 예문도 있다. 상식적으로 한눈을 팔았으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충돌을 당한 것이 되므로 둘 다 '부딪히다'로 쓰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예문들은 '부딪치다'와 '부딪히다'의 구분이 어렵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능인고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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