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은 또 다른 활동을 부른다. 마찬가지로 관계는 더 많은 관계를 증식한다. 잘 짜여진 프로그램을 정해놓고 시작하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게 훨씬 더 활력 있고 흥미진진하다.(고미숙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중에서)
새해가 밝았음에도 연수 진행, 청소년 학술대회, 사제동행 토론 어울마당 등으로 인해 많이 힘들었나보다. 보는 사람마다 늙어 보인다는 말을 하니 서운하기도 했다. 어디 힘들고 싶어서 힘드나, 힘드니까 힘들지. 그런 마음이었는데 모임이 끝나고 P선생님의 문자가 들어왔다. '샘, 늙는 건 괜찮은데 절대로 아프진 마세요. 그건 절대사절입니다.' 신기한 건 그것을 시작으로 같은 마음이 담긴 문자가 줄을 이었다.
이것이 우리 모임의 속살이다. 물론 나에게만 존재하는 풍경이 아니다. 함께 걸어가는 구성원 누구에게나 서로에게 전하는 마음이 그렇다. 그것은 대단한 에너지였다. 워크숍이든, 어울마당이든, 축제든 모두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사실, 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만들고, 진행하는 것은 단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다. 그것이 진행되려면 개별적으로 연락을 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고, 안내 팻말을 붙이고, 짐을 옮기는 소소하지만 힘든 일이 많다. 행사는 그런 부분이 없으면 무조건 실패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못하면서 소리 없이 그 일을 하는 사람들, 행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관계의 증식을 통해 구성된 사람들이다. 내가 선택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우리 모임을 선택한 사람이다. 구성원들은 관계의 증식을 통해 그들만의 모임을 다시 만든다. 구심력보다는 다양한 원심력을 발휘한다. 원심력을 가진다고 영역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영역을 확대한다.
사실 모임은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선생님만이 아니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참여한다. 대학생이나 고등학생, 심지어 중학생과 초등학생들도 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도움을 준다. 누군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동일한 공간에서 같은 일을 진행하기 위해 함께 걷는다. 처음에는 내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내 자신의 스펙을 위해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아이의 행복을 위해, 친구나 후배를 돕기 위해 함께한다.
그러다보니 모임에는 조직표가 따로 없다. 자신이 잘 하는 분야를 스스로 선택하여 업무를 분장한다. 어쩌면 전체적인 프로그램조차 업무분장에 따라 변형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식사를 준비하는 측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식사시간이 행사의 일부분이 되기도 하고, 청소를 담당한 측에서 아이디어를 내면 청소가 축제의 일부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만드는 행사는 이미 만들어진 행사가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만들어가는 축제이다. 구성원 개개인이 주체가 되기 때문에 소외되지도 않는다. 어울마당의 참여인원은 최소한 600인이고, 축제는 2천 명이 넘는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진행은 자연스럽다. 진행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들까지도 주인공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성원들이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에 그쳤다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풍경이다. 구성원들은 행사의 아바타가 아니라 개별성을 가진 주체다. 가장 큰 의미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엄청나게 생성된다는 점이다. 작은 실수가 생기거나 진행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이 전체 풍경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실수와 문제가 없으면 재미도 없지 않은가? 바로 그 실수와 문제로 인해 다음을 더욱 잘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히려 흥미진진하다. 벌써 다음이 기대되지 않는가? 이들이 어떤 풍경을 만들어 다시 나타날지가.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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