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근현대 名 건축기행] <6>울릉도 근대역사박물관

입력 2014-02-08 07:50:08

자연과 어우러진 日 적산가옥…잘 정돈된 '고단한 일제 침탈의 흔적'

울릉도의 광대한 자연을 건축과 연계시킨 배치방식을 갖고 있는 목구조 적산가옥인 울릉도 근대역사박물관은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울릉군청 제공
울릉도의 광대한 자연을 건축과 연계시킨 배치방식을 갖고 있는 목구조 적산가옥인 울릉도 근대역사박물관은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울릉군청 제공
역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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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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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경북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이정호 경북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울릉도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건축, 근대역사박물관: 등록문화재 235."

경상북도의 동쪽 끝에서 동해를 지키고 있는 형제 섬 울릉도와 독도. 그 중 울릉도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큰 섬이다. 섬의 기세는 젊어 보이지만, 땅의 나이는 육지보다 더 많은 섬이다. 최근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일본의 망언으로 시달리고 있듯이, 근대기 제국주의 시대에는 울릉도 역시 영토를 탐내는 러시아와 일본의 침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역사와 자연의 섬인 울릉도는 제대로 된 개발의 과정을 갖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섬이 상혼과 개발주의에 의해 파괴되기도 했다. 가파르고 구불구불해서 매력적으로 보였던 산길과 그에 조화되는 소박하고 단아한 건물은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도 행여나 하고 살펴보면 독특한 바위들이 이룬 자연풍경과 분화구의 희귀한 나무들은 여전하지만, 특산물만 기억에 남는 정도이니 아쉬움이 크다.

이 섬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는 건물이 있는데 일본식 적산 가옥이라는 점이 아쉽지만, 건축적으로 잘 정돈되어 보존되고 있다.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구 이영관 가옥)

이 가옥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벌목, 제재업, 어업에 종사하기 위해 울릉도에 많이 들어와 살던 때, 벌목업자인 일본인 사카모토 나이지로(坂本來次郞)가 건립한 주택이었다. 당시 희귀목이었던 솔송나무, 규목, 삼나무를 사용해 건축했고, 일식 목조 상점 겸용 2층 주택이다. 설계자는 알 수가 없고 해방 이후 잠시 숙박업소(포항여관)로 탈바꿈했으나, 2008년까지 이영관 씨가 가정집으로 사용하다가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건축 당시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근대주택사적으로나 일제의 울릉도 입도와 경제침탈의 역사자료로서 가치가 큰 건물이어서 문화재청에서 2년간의 복원사업을 거쳐 재개관하였으며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등록문화재 235호)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현재는 문화센터로 사용하고 있다.

이 문화센터에서는 울릉도의 문화유산, 울릉도의 근현대사와 가옥 이야기,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무단 포획으로 사라진 강치이야기 등을 소개하며 울릉도와 독도 관련 문화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근대역사를 담은 이 건축물의 보존과 활용의 의의는 일본인들의 침략 사실의 역사적 증거물로, 그리고 후손들 역사교육의 장으로, 철거하지 않고 보존함으로써 오히려 그 생생한 현장을 고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부공간에 전시된 사진으로 보는 보수정비 공사 과정은 리모델링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시행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건축과 자연의 합치, 기능성과 장식성의 조화

이 주택은 전면이 도로에 면하므로 대신 집 배면에 후정(後庭)을 조성해 놓았다. 이 후정에서는 뒷산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고 정상에서는 도동항의 아름다운 전경은 물론 멀리 동해까지 펼치지는 장대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집주인은 매우 넓은 면적의 정원과 바다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광대한 자연을 건축과 연계시킨 배치방식은 울릉도의 다른 주거건축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을 만큼 대지형상과 도로 상황에 잘 맞춘 배치계획이다.

평면을 살펴보면 거주공간과 업무공간을 좌, 우로 명쾌하게 구분해 준다. 원형대로 잘 남아있는 이 목조건물은 각 목재 부재들의 결합방식이 매력적이다. 때로는 얹혀 있고 때로는 매달린 듯 보이는 다양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변화는 목조건축만의 특별한 장식성을 잘 보여준다. 특히 문살의 패턴은 너무 가늘고 섬세해서 오래 시선을 머무르게 한다.

건축은 사람의 일상을 편하게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 편안한 공간은 이용하는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 주거건축 공간은 그 주인의 생활 방식에 대한 표현이며 타인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강한 바람과 눈이 많은 섬에서 건물은 외풍의 영향이 없어야 하며 또 눈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 집은 유리 창문 밖에 판문(목재 덧문)을 설치하여 이중문을 만들고 문집을 설치했다. 폭설과 강풍, 울릉도의 기후를 잘 감안한 이 방식은 적산가옥이 울릉도 기후에 어떻게 적응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근래 에너지보존과 친환경적 건축에서 구사하는 더블 스킨 방식과도 일치한다.

▷장인의 손길이 닿은 건물

목구조로 된 적산가옥의 특징 중 한 가지는 구조와 기능 그리고 장식적으로 적합한 크기를 가진 부재들이 수직, 수평적으로 적절하게 연결되고 분할되어 간결하고 명쾌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는 점이다. 현대건축과 달리 목구조에서는 구석구석에 수납과 장식의 용도로 쓸 수 있는 공간들을 자연스럽게 만들 수가 있다. 그리고 구조체는 세월의 무게를 담아 시간성에 맞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또한 각재는 하나의 면을 적절한 크기의 아름다운 비례로 구성되어 몬드리안의 그림이나 리트펠트의 가구 같은 한 폭의 근대회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장인의 손길이 닿아 가공된 목재의 감은 현대의 기계생산제품에서는 볼 수 없는 깊은맛이 배어 있다, 근대건축의 참맛은 바로 이런 수공예의 맛이다.

이 집에 사용된 모든 작은 것들-손잡이, 창살, 문틀 등-마저 시간에 따른 자연스런 변형까지 예상해서 가공한 듯하다. 변형된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그 이치에 순종하는 태도는 인간의 삶에서처럼 건축에서도 중요하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울릉도에 그만큼 좋은 나무가 많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울릉도 도동과 저동에는 여전히 적산가옥이 많이 남아있지만 원형 그대로 보존돼 문화재로 등록된 가옥은 이 건물뿐이다. 역사는 영광뿐만 아니라 아픔마저도 기록해야 하는 육화된 화석이라 할까. 건축 문화가 역사의 한 구비 속에서 너무도 정직하게 존재해 왔음을 새삼 확인했다.

경북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이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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