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선 안돼!!…다시금 되새겨야 할 '그날의 기억'
'미안하다. 가방이랑 신발 못 전하겠어. 돈가스도 해주려고 했는데... 미안.. 내 딸아 사랑한다.' '오늘 아침에 화내고 나와서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어. 자기야 사랑해 영원히' '오빠 없어도 밥 꼬박꼬박 챙겨 먹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알겠냐. 그리고 기다리지마 나 안간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개된 대구지하철사고 피해자들이 보낸 문자 메시지들이다. 대구지하철사고는 대구 역사에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참사를 당한 이들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지하철사고 11주기(2003년 2월 18일)를 앞두고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추모전이 열린다. 비영리예술법인 온아트가 주관하고 현대미술연구소 디카가 주최하는 'CMCP'(collective memory collective power)가 이달 12일부터 3월 8일까지 사고가 발생한 중앙로역을 비롯해 대중교통전용지구, 봉산문화회관 등에서 진행된다.
▷국내외 작가 작품 20여 점 전시
'CMCP'는 미술을 통해 대구지하철사고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함으로써 참사로 위축된 시민공동체를 되살리고 대구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김기수 디카 대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대구지하철사고가 발생한 지 11주기가 되었지만 그동안 대구 및 국내 미술계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2011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9'11테러를 기억하기 위한 전시가 열려 큰 호응을 얻은 것과 대조적이다.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모델을 제시하고 지속가능한 시민공동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밑거름을 제공하기 위해 이번 전시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억, 반성, 비전'을 모토로 한 이번 전시는 2012년 7월부터 준비됐다. 자료 조사를 거쳐 유족 인터뷰, 작가 섭외 등을 거쳐 작품 만드는데만 꼬박 1년 시간이 소요됐다. 작가들이 작품에 기울인 노력과 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전시에 필요한 자금은 독지가 후원, 크라우딩 펀딩을 통한 시민들의 모금액으로 마련된 것이어서 의미를 더한다.
이번 전시에는 설치미술가 백정기'이완'김나현, 미디어 아티스트 하원식'이태희'이승희 등의 국내 작가와 태미 코 로빈슨(한양대 교수), 댄 마이클셀(홍익대 교수), 로미 아키투브(홍익대 교수), 규라 김 등의 해외 작가, 권정호 전 대구대 교수, 박남희 경북대 교수 등의 초대 작가가 참여해 영상, 설치, 아카이브 등 대구지하철사고와 관련된 작품 20여 점을 선보인다.
또 잊혀져 가는 대구지하철사고를 기억하고 반성하기 위해 지역 대학 교수 및 학생, 중'고등학교 교사, 전업 작가 등 200여 명이 함께 만든 배너아트 192점도 걸린다. 배너아트에는 대구지하철사고와 관련해 지난 10여 년 간 누리꾼들이 온라인에 남긴 글이 실려 있다. 배너아트는 대중교통전용지구와 중앙파출소에서 대구백화점에 이르는 거리 가로등에 설치되어 전시 기간 추모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김기수 디카 대표는 "이번 전시는 참사로 인해 갈등과 분열을 겪은 시민공동체를 공감과 나눔, 연대의 숨결로 되살리는 데 기여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봉산문화회관
이태희 계명대 교수의 영상 설치 작품 'Mind The Gap'과 김나현 작가의 영상 설치 작품 '관계'(Relation), 박소영 작가의 아카이브(기록물) 작품 등이 3전시실에 전시된다. 'Mind The Gap'은 거꾸로 타고 있는 촛불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중력의 법칙과 불의 속성에서 벗어나 거꾸로 타고 있는 촛불은 희생자와 관람자 사이의 현실적 간격을 드러내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관계'는 너무 가까이 있어 무관심하거나 나와 상관없다는 이유로 소홀한 관계 의식을 다룬 작품이다. 작가는 '관계'를 통해 중앙로역에 추념비 하나 없는 현실을 고발하고 참사의 기억을 지우려고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4전시실에서는 '아빠, 나비 집을 지어요'라는 아카이브 형식의 전시가 열린다. '아빠, 나비 집을 지어요'는 대구지하철사고로 죽은 딸의 초등학교 일기에 나오는 한 제목이다. 아버지는 딸이 죽은 지 1년 후 일기를 발견하고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딸을 잃은 아버지가 딸을 그리며 지은 추모 시와 사진 그리고 딸의 정취가 배여 있는 집 주변 풍경을 담은 영상 등이 함께 공개된다.
또 엘리베이터와 로비에는 태미 코 로빈슨과 댄 마이크셀이 공동 작업한 사운드 설치 작품 'Transit & Turnstile'이 전시된다. 대구지하철 환승 신호 시스템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대구지하철사고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담고 있다. 특히 디스플레이에 나타나는 문구들은 유가족과 친구들이 사랑했던 고인들의 존재를 기억하기 위해 작성한 것들이다.
▷중앙로역
백정기 작가의 작품 '물질의 기억'(Memory of Matter)이 설치된다. 작가는 불에 탄 전동차의 그을음을 이용해 특수 잉크를 만든 뒤 사진 프린트에 사용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물질은 생물과 달리 기억을 가질 수 없다는 통념을 깨뜨린다. 작가는 사고 현장의 재와 그을음을 통해 사건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대구라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분수대 앞에서는 하원식 작가의 사운드 설치 작품인 '천상의 메시지'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천상의 메시지'는 소리로 관람객들을 중앙로역에 있는 통곡의 벽까지 유도한다. 이를 통해 대구지하철사고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연민과 공감을 갖도록 관람객들을 이끈다.
이와 함께 중앙로역 주변에서 박소영'김규라 작가의 '교차로에서'(At the Crossroads)를 만날 수 있다. 대구의 어제와 오늘을 반추한 작품으로 정치'사회'문화'예술적 측면들을 통해 대구 기질의 선천적'후천적 상관관계를 조명한다.
▷대중교통전용지구
국민은행 중앙로지점 앞에는 이승희 작가의 설치 작품이 전시된다. 작가의 야외 설치작품은 6개의 각기 다른 모양의 언덕 같은 형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 속에 발광하는 물체는 존재를 의미하며 이는 희생자 가운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6명을 상징한다.
아카데미 극장 앞에는 캔디 창의 커뮤니티 아트가 설치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기 전에 나는 ________ ' '대구시는 보다 나은 도시가 될 거야, 만약________ ' 라는 두 개의 미완성 문장이 쓰인 대형 칠판은 시민들의 참여로 완성된다. 시민들은 각자의 생각을 직접 적어 보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구지하철사고를 추모하는 공동체 미술의 한 일원이 된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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