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요즘 내가 마주하는 퇴근길 풍경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얼마 전 이사한 곳의 밤 풍경은 갖가지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 차 있는 시끌벅적한 도심의 밤이 아니라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의 희뿌연 불빛만이 앞을 비춰주고 있는 적막에 가까운 조용한 시골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공권력의 사각지대도,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위험지역도 아니며, 깊숙한 오지에 위치해 퇴근길이 엄청나게 멀거나 길이 험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제껏 환한 도시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있던 탓일까, 아직까지는 이 적막한 길이 영 낯설고 때론 무서움까지 느끼곤 한다. 그래도 집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긴장했던 마음엔 안도감이 퍼지기 시작하고 저만치 서 있는 우리 집이 보이는 마을 어귀에 다다르면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상할 여유까지 생기곤 한다. 그리고 별이 쏟아질 듯한 시골 하늘에 감탄하며 걷다 보면 우리 집이다. 그 집에서 나를 반기며 집 밖으로 내다보고 있는 체셔가 보인다.
체셔는 나에게 참 묘(妙)한 묘(猫)이다. 내가 이름을 불러도 들은 척 만 척하며 나에게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다가도 무심코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바로 뒤에서, 또는 근방에서 자신의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식구들이 늦은 귀가를 할 때면 꼭 이렇게 문 앞에 서서 귀가를 반기고 있는 것이다. 예전엔 아파트 생활이라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철판으로 만든 딱딱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야만 비로소 체셔와 앨리샤가 기다리고 있는 그 모습이 보였지만, 이젠 집 밖에서도 우리를 기다리며 밖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체셔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낯선, 그 나름 새로운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꼬리를 치며 반기는 강아지의 반김과는 다른, 움직임이 거의 없는 정적인 모습이라 행동으로 녀석의 감정이 확연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마음속부터 배어 나오는 반가움을 물씬 풍기고 있기에 나에겐 그 반김이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사실 그동안 체셔가 워낙 쌀쌀맞은 척을 많이 했기에 요즘 말하는 일명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에 걸맞은 '차도냥'(차가운 도시 고양이)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포된 의미까지 생각하면 '차도남'은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남자'이다. 물론 지금은 체셔가 우리와 함께 시골에 살고 있어서 더 이상 '차도냥'이 아니지만 '따뜻한 속내'는 여전하다. 그래서 현재 애교를 담당하고 있는 '앨리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직은 '우리 집'을 떠올리면 체셔의 골골거림과 따뜻한 털의 감촉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그저께 인터넷 기사를 훑어보다가 '고양이가 주인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견했다. 그 기사에 나오는 영국의 어느 동물행동학자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고양이들은 함께 사는 사람을 '덩치가 큰 고양이' 정도로 인식한단다. 그래서 꼬리를 들고 다른 친구 고양이를 반기듯 자신이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꼬리를 들고 반긴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고양이의 '주인'으로서 고양이들이 '복종'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급의 고양이'보단 '함께 사는 반려인'으로서의 대접을 받고 싶은 입장이기에 살짝 씁쓸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체셔를 보면 고양이를 대할 때와 우리 가족을 대할 때의 태도는 다르다. 체셔가 얼른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대상도, 그리고 애교를 부리는 대상도 오직 우리 가족뿐이다. 그 두 가지만 보더라도 적어도 체셔가 단순히 우리를 같이 사는 생명체가 아닌 그 이상으로 보는 것임은 틀림이 없다. 마치 우리에게도 체셔가 늘 생각나고 보고 싶어지는 단 하나뿐인 체셔이듯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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