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옴 붙은 날이다. 대단치도 않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왼쪽 팔꿈치 골절상이었다. 의사는 혀를 끌끌 차더니 손끝에서 겨드랑까지 깁스를 해 버렸다. 기가 차서 며칠 투덜대다가 머릿속으로 정리를 했다. 다리 아픈 것보다 팔 아픈 게 낫고, 오른팔보다 왼팔이 낫고, 여름보다는 겨울이 낫다.
이상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손잡이인데 그깟 왼팔 좀 다쳤다고 이렇게까지 불편할까? 왼팔을 나무토막처럼 고정시켜 놓고 보니 한쪽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샤워는 물론이요 머리조차 감을 수가 없었다. 약병 뚜껑도 한 손으로는 열 수 없었다. 물을 붓다가도 컵을 엎지르고 밥을 먹다가도 밥공기를 떨어뜨렸다. 한 번은 국을 푸다 국자를 놓쳐 다리에 미역 몇 잎이 붙었는데 한 김 나간 국이 아니었으면 화상을 입을 뻔했다. 왼팔의 유고(有故)로 오른팔까지 패닉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
내 의식 속의 오른쪽과 왼쪽은 갑(甲)과 을(乙)의 관계였다. 모든 일에는 갑의 의지가 선행되었다. 칫솔질을 할 때도 을은 단지 물컵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글씨를 쓸 때도 종이를 누르는 입장이었고, 돈을 셀 때도 화폐를 붙잡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왼쪽이 주도적으로 기능한 적이 있다면 시계나 반지를 낄 때 정도가 아닐까. 서명도 건배도 악수도 오른쪽 혼자 거뜬히 해 내므로 왼쪽이 없어 가사 상태에 빠질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갑의 권력은 허상이었던가? 그걸 만천하에 공표하기 위해 을이 반기를 든 것일까. 가슴속 응어리를 꼭꼭 쟁여 놓았다가 계단을 핑계로 반란(反亂)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깁스 푸는 날, 자유로워진 왼팔은 90도 각도에서 더 이상 펴지지 않았다. 그동안 뼈의 활동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오른팔이 왼팔을 부지런히 재활운동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방치하거나 소홀하면 뼈가 그대로 굳어 일평생 장애로 남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왼팔은 흠칫 놀랐다. 여차하면 을의 구실도 제대로 못 할 상황이 아닌가. 두렵고 무서웠다. 오른팔은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궁금했다. 곁눈질로 살짝 눈치를 보았다.
오른팔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재활운동인가 뭔가를 위해 묵묵히 왼팔을 잡아당기는 것으로 화해를 청하는 것 같았다.
"아얏! 아~ 아!"
왼팔이 목청껏 비명을 질러댔다.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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