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지지 않는 꽃

입력 2014-02-03 11:29:05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나치의 광기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절대 권력 앞에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절망을 185분짜리 흑백필름에 담아냈다. 촬영은 '홀로코스트'의 현장 아우슈비츠 인근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주로 이뤄졌다. 쉰들러가 유대인을 구하는 근거지가 됐던 빛바래고 우중충한 실제 공장을 배경으로 삼아 객관성을 더했다.

세계인들이 한 편의 영화를 통해 '홀로코스트'의 실상을 더욱 가슴에 새긴 것은 물론이다. 이 한 편의 영화만큼 나치 독일의 잔혹함을 적나라하게 고발할 수 있는 수단도 없었다. '쉰들러 리스트'는 1993년 제6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부문을 휩쓸었다.

2일 프랑스에서 폐막한 제41회 앙굴렘 국제만화축제가 세계인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 축제에 선보인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지지 않는 꽃' 기획전이 세계인의 관심을 자극했다. 일제 만행과 위안부 문제를 고발한 20여 개의 만화 작품이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나흘간 열린 이 전시회에 1만7천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 위안부의 실상을 알게 됐고 공감했다.

역사를 부정하려는 일본의 방해 공작은 거칠었다.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이 없다는 전시회를 열려 했지만 조직위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며 부스를 철거하도록 조치했다. 일본의 한 출판사는 '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플래카드를 내걸며 어깃장을 놓았지만 이 역시 조직위의 철거 요구를 받았다.

한 일본 기자가 '왜 한국의 정치적인 기획전을 놔두고 일본만 철거하는가'고 묻자 조직위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알리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알리는 것이 정치적이다."

예술로 승화된 문화의 힘은 그 어떤 정치적 수사보다 강하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일제의 잔혹함을 알리는 데 소홀했다. 이번 기획전을 찾은 많은 세계인이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끄러운 일이다.

'지지 않는 꽃'전은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는 문화의 힘을 보여줬다.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것은 비단 만화뿐만이 아니다. 영화와 뮤지컬 등 문화 전반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앙굴렘은 끝났지만 이대로 끝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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