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근대골목에서 대구경제 미래 본다

입력 2014-01-22 07:23:25

명품도시 리옹(Lyon)은 대구와 닮은 점이 많다. 파리, 마르세유에 이어 프랑스의 3번째 도시라는 점과, 긴 역사와 더불어 교육문화도시에 대한 시민들의 자긍심이 그것이다. 흔히 파리지앵이라고 하면 세련된 사람이라는 뜻과 함께 깍쟁이라는 이미지도 숨어 있는 반면, 리옹 사람을 통칭하는 리오네(Lyonnais)는 보수적이지만 자긍심이 높은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스가 군사 주둔지를 설치하면서 역사에 등장한 리옹은 옛 시가지(Vieux Lyon)인 푸르비에르 언덕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수많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옛 시가지에 15세기부터 이탈리아 상인들이 활발하게 진출했고 골목이 만나는 광장에는 상설화된 공공시장이 만들어졌다.

원래 리옹은 르네상스시대부터 실크 생산지로 명성을 얻은 바 있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리옹의 실크산업은 위기에 처했고 1831년 직공들의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나 리옹 경제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때부터 리옹은 산업을 다각화하여 화학, 의약품 등으로 산업구조를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리옹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1981년 세계 최초로 건설된 TGV 때문이었다. 420㎞나 떨어진 파리로 경제와 문화 등 모든 것이 흡수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지역 컨벤션에 참가하기 위한 관광객이 오히려 급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대구로 시선을 돌려 보자. 긴 역사와 함께 산과 강으로 싸인 대구는 지형적으로 리옹과 흡사한 점이 많다. 대구는 중구를 중심으로 옛 시가지가 잘 보존되어 있어 리옹보다 더 많은 골목이 남아 있다. 2008년 중구의 골목투어로 5개 코스가 지정되면서 최근 골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골목투어가 시작되었던 2008년 286명에 불과했던 공식 방문자가 작년 20만 명을 넘었다는 반가운 내부 통계가 있다.

골목의 사전적 정의로 보면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이라고 한다. 약전골목, 진골목, 근대골목 등 대구의 골목은 다양한 얼굴과 우리의 삶이 스며 있다. 옛 시가지가 지닌 골목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다음에 대해 논해 보기를 기대한다.

첫째,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정부지원이다. 재개발에 밀려 사라져가는 골목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가치를 존중하기 위한 골목디자인, 상권살리기, 명품관광화사업 등에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리옹의 경우 지역상인협회가 1940년대부터 골목을 정비하고 관광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다양한 노력을 했으며, 이를 평가한 정부는 1954년 이곳을 최초로 특별문화지역으로 지정하고 전폭 지원했다.

둘째, 골목에 담긴 콘텐츠를 심화해야 한다. 효종 때 동북아 약재거래의 중심지였던 약령시, 가톨릭의 중심지였던 계산동 등에 대한 보다 자세한 안내가 필요하다. 또한 관광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리옹의 복잡한 골목은 예로부터 유명해서 2차대전 때 레지스탕스의 거점이 되었고, 그 덕분에 지금은 박물관이 들어서 역사의 산교육장이 되고 있다. 1980년대부터 푸르비에르 언덕에서 열리는 '빛의 축제'(Fete des lumieres)는 종교의식을 가미하여 12월임에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을 골목으로 모으고 있다.

셋째, 국제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근대골목에 대한 안내자료는 외국어로 된 해설이 많이 부족하다. 홈페이지는 물론이거니와 외국인을 위한 관광책자에 내용이 충실히 담아야 한다. 리옹은 1998년 옛 시가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바 있다. 중장기적으로 근대골목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국제적 안목을 가진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리옹은 1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도시이지만 지역총생산이 약 100조원에 이르는 경제중심지다. 근대골목의 명품화를 위해 리옹에서 벤치마킹할 것이 많다.

김영우 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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