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새해를 며칠 앞두고, 재수생 막내딸이 서울 소재 모 여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지난해 2월부터 수능 전까지 경기도 소재 모 기숙학원에 제 발로 들어가서 노력하더니 결국 합격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맛보게 된 막내 녀석이 대견하단 생각과 더불어 지금보다는 한결 수월(?)했던 나의 대학 입시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85학번, 소위 말하는 학력고사 세대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갈 당시는, 내신 성적과 학력고사 성적을 합한 점수로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 단순한 입시 제도에 불과했다. 심지어 수학을 못해도 모자란 점수는 다른 과목에서 보충할 수 있어 이과에 지원하고 의과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가능했다. 게다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우리는 과외도 받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받을 수가 없었다. 중학생 시절이던 1980년 7월 30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의해 과외 금지 조치가 발표되었기 때문인데, 덕분에 가기 싫었던 영어 학원을 땡땡이치고 좋아하던 서예학원에 다녔던 아련한 기억도 이제는 옛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세대들은 복받은 세대였다. 공부에 찌들 수 있는 중고등학교 시절, 과외 열풍에서 해방되어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면서 대학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대학 졸업 후에는 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에도 비교적 쉽게 입사할 수 있었다.
당시로부터 29년이 지난 오늘날의 대학 입시 제도는 어떠한가? 대학에 입학하려면 2008년 이후 시행된 수능 등급제, 내신 등급제, 대학별 자율 결정(입학사정관제, 적성검사 전형 등)에다 수시, 정시, 논술, 생활기록부, 추천서를 줄줄 꿰어야 하고 단순 암기식의 학력고사를 대체한다는 명분으로 1994년부터 시행된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심지어 막 우리말을 배우기 시작한 유아들마저 과외를 하고, 중고등학생은 아침 일찍 등교해서 수업 마치자마자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다가 밤이 늦어서야 집에 초주검이 돼서 돌아온다.
이런 지금의 교육 환경과 입시 제도가 요즘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융합적 사고방식, 창의적인 능력 등을 키워 전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제도이긴 한 건가? 시험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이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이 현실이 과연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창의적 사고를 가진 인물을 낳기는 하는 건가?
13년째로 접어드는 개원 의사인 본인은 이만하면 사회적 성공을 이룬 케이스다. 학창 시절의 나는 수학을 썩 잘하진 못했지만 당시 입시 제도 덕분에 의대를 지원할 수 있었고,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모자란 수학 실력이 걸림돌이 된 적이 없다. 수학 실력은 조금 부족했지만 문학과 철학을 곱씹으며 음악을 사랑했던 인문학적 소양은 오히려 의사로서의 성장에 도움이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회상하는 학창 시절은 또 어떤가. 지금도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의 여름을 선명히 기억한다. 오후 4시 방과 후 다른 반 아이들과 야구 시합하던 일, 해 질 무렵 공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학교 운동장에서 내가 끝내기 안타를 쳐서 거둔 승리에 아이들과 하이파이브하던 기억. 그 추억은 지금도 달콤하고 푸르며, 내 삶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지금의 우리 아이들을 떠올리면 좋던 기억이 미안하기까지 하다.
30년 전, 과외도 없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방과 후에 스스로 사고하며 학창 시절을 보낸 우리 세대들의 교육이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었는지에 대해 되묻게 된다. 요즘 아이들처럼 학교 수업 시간에 자고 방과 후 밤늦게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이 시대가 정상인지도 궁금하다. 다행히도 막내딸의 입시가 끝나고 올해부터 나는 이 고민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먹먹해지는 마음은 나 역시 대한민국 부모이기에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아이들이 행복하기에는 2015 입시 제도도 여전히 복잡하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백승희 사랑모아통증 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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