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면 어촌은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밤새 잡았던 고깃배가 선창에 도착하면서 중개인들과 어부 가족이 나와 어시장을 방불케 하는 새벽이다. 한때지만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진다.
어부들이 애써 고기를 잡는 재미도 여기에 있는가 보다.'볼락어'는 지금도 동부 남해안 지방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이다. 젓갈로는 일품이다. 사리 때가 되면 밀물이 밀려와 사립문을 두드린다는 작자의 상상력에서 많은 감동을 주고 있는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달지고 까마귀 우는 바다는 고요한데
밤중에 밀물 불어 사립문을 두드리네
알겠네, 불락 배 도착한 줄 물가 사공 소리치니.
月落烏嘶海色昏 亥潮初漲打柴門
월락오시해색혼 해조초창타시문
遙知乶鮥商船到 巨濟沙工水際喧
요지볼락상선도 거제사공수제훤
【한자와 어구】
月落: 달이 지다. 烏嘶: 새가 울다. 海色昏: 바다는 어둑하다. 亥潮: 해시, 밤 9시~11시. 初漲: 밀물이 불다. 打柴門: 사립문을 두드리다. // 遙知: 멀리서도 알다. 乶鮥: 불락어. 商船到: 상선이 도착하다. 巨濟: 거제. 沙工: 사공. 水際喧: 물가에서 소리 지르다, 곧 볼락을 사라는 소리임.
물가에서 볼락 사라고 소리 지르네(甫鮥魚)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담정 김려(金鑢:1766~1821)다. 경남 진해로 유배됐을 때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지었는데 여기 수록된 볼락어가 대상이다. 우해(牛海)는 진해의 별칭으로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와 함께 귀중한 자료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달 지고 까마귀 울어대는 바다는 어둑한데 /밤중에 밀물 불어 사립문을 두드릴 듯하네 /볼락 파는 배 도착한 줄 멀리서도 알겠으니 /거제 사공 물가에서 볼락 사라 소리 지르네'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불락어 사라하네'로 의역할 수 있다. 볼락어, 즉'보라어'는 모양이 호서에서 나오는 황새기(黃石魚)와 비슷한데 매우 작으며 색깔은 옅은 자색이다. 원주민들은 보락(甫)이라고 부르거나 볼락어(乶魚)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방언에 옅은 자색을 보라라고 하는데 보는 곱다는 뜻이니, 보라(甫)는 고운 비단이라는 말이다. 저물녘 바닷가 마을에 밀물이 집문 앞까지 들어올 듯이 밀려오는 모습이 펼쳐진다. 멀리서 볼락 파는 거제 뱃사공의 장사 소리가 들려오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촌의 일상적인 평화와 활기가 느껴진다. 젓갈은 맛이 약간 짜면서도 쌀엿처럼 달콤하며 접시에 담으면 깨끗하니 색깔이 매우 좋다. 싱싱할 때에 구워 먹으면 모래 냄새가 난다고 한다. 우리말을 지나치게 한자의 의미로 해석하려는 무리수가 보이기는 하지만 당시 진해, 거제의 풍속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다. 우리 어민들의 생활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1766년에 태어난 김려는 조선 후기의 학자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사정(士精), 호는 담정(庭)이다. 집안이 노론계의 비중 있는 명문으로 당쟁의 화를 많이 당했다. 1780년(정조 4년), 15세에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당시 유행하던 패사소품체(稗史小品體)의 문장을 익혔다. 또 김조순(金祖淳)과 '우초속지'(虞初續志)라는 패사소품집을 냈다. 이옥(李鈺) 등과 활발한 교유를 하면서 소품체 문장의 대표적 인물로 주목받았다. 1791년 생원이 됐으며 촉망받는 인재로 인정받았다.
1797년 강이천(姜天)의 비어사건(飛語事件)에 연좌돼 부령으로 유배됐다. 유배지에서 부사 유상량(柳相亮)과는 반목하고 가난한 농어민과 친밀하게 지냈다. 이는 그가 문학에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담는 계기가 됐다.
1801년(순조 1년) 강이천사건이 재조사되어 천주교도와 교분을 맺은 혐의로 진해로 유배됐다. 그곳에서 어민들과 친해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지었다. 저서로 '담정유고' 12권이 있으며, 말년에는 '한고관외사'(寒皐觀外史), '창가루외사'(倉可樓外史) 등 야사를 편집했다. '우해이어보'는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와 함께 우리나라 어보의 쌍벽을 이룬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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