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어릴 적 기억 속엔 고양이가 꽤 귀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그때엔 일명 '살찐이'라고 불리는 고양이들이 마을 쌀집마다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 고양이들은 쌀을 쥐들로부터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단다. 이 살찐이들이 딱히 쥐를 잡지 않아도, 고양이가 머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쥐들이 위협을 느꼈기 때문인지 신기하게도 고양이가 머무는 근방에선 쥐들이 싹 자취를 감추었단다. 그맘때의 고양이들은 사람에게 길들여 진 후 집과 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며 집집마다 한 마리씩은 꼭 있던 듬직한 '번견'(番犬; 집을 지키거나 망을 보는 개)들처럼 곡식을 지키는 나름 막중한 파수꾼 임무를 맡고 있었다.
엄마 어릴 적 외갓집에도 어여쁜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체셔나 앨리샤보다도 예쁘게 생겼었다며 늘 엄마가 감탄하며 이야기 꺼내곤 하는 그 하얀 고양이 역시 집 안 부엌에 머물며 곡간의 파수꾼 역할과 동시에 집안의 귀염둥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었단다.
그 하얀 고양이 이후로 외갓집에 고양이가 있었던 적이 없었지만, 얼마 전 무려 두 마리의 고양이가 외갓집에 나타나게 되었다. 바로 이사하기 전 한 달간 체셔와 앨리샤가 외갓집에 맡겨진 것이다. 이사 전까지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리기에, 그동안 고양이들이 받게 될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따로 머물 곳을 물색했다. 원체 예민한 두 녀석이 맘 편히 조용히 지낼 수 있고, 또 우리도 믿고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외할머니밖에 없겠다 싶었다. 어릴 적부터 낯을 심하게 가리던 체셔였지만 다행히도 외할머니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밀감을 보이며 살갑게 구는 체셔를 보며 '동물적인 감'으로 외할머니가 우리 가족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게 아닐까 이야기하곤 했다. 전에도 몇 차례 우리 가족이 집을 비울 때면 5분 거리에 살던 외할머니가 하루에 한 번씩 들러서 통조림과 밥을 챙겨주시곤 했었기에 체셔에게는 가장 낯익은 사람이었다. 외할머니 역시 흔쾌히 맡아주신다며 데려오라고 하셨기에 그렇게 우리 집 고양이들의 대이동이-고양이와 고양이 사료, 장난감, 화장실, 화장실 모래가 함께하는- 시작되었다.
외할머니 집에 들어선 후 '어, 전에도 와본 집이잖아!' 하면서 몇 시간 만에 적응한 체셔와 달리 앨리샤는 좀 낯설어 했다. 나 역시 앨리샤를 우리 집에 데리고 온 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나와 떨어져 있게 되는 일이라 반대도 하고 걱정도 했었지만 곧 노파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의 매일 집에 있는 외할머니였기에 고양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 했고, 곧 앨리샤는 외할머니에게도 자신의 특기인 폭풍 애교를 보였다. 두 마리 다 외할머니 옆에 꼭 붙어서 잤고, 앨리샤는 나에게 그랬듯 외할머니가 움직일 때마다 마치 '강새이 새끼' 마냥 치맛자락을 졸졸 따라다녔단다. 덕분에 주말 엄마와 내가 외갓집에 찾아 갈 때마다 외할머니는 '체셔는 꾀돌이고 앨리샤는 애교쟁이야' 하시면서 그동안 고양이들과 있었던 이야기 보따리를 한가득 풀어놓으셨다.
'체셔나 앨리샤나 너무 예뻐. 털만 조금 덜 날렸으면 좋겠지만.' 이 말은 두 마리 탁묘(고양이를 맡아 기르는 일)를 무사히 마친 외할머니의 평이다. 체셔, 앨리샤와 함께하며 외할머니가 더욱 녀석들을 예뻐하게 되었고, 우리 가족들도 고양이들과 한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지금의 고양이들은 예전 고양이들처럼 곡간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은 하지 않지만, 사람들 곁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금방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녀석들이 우리 곁에 있음으로써 더 편안한 마음과 행복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비록 풀풀 날리는 털까지 부수적으로 따라오지만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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