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신목근통신(新木槿通信)

입력 2014-01-16 11:05:49

일본 극우 세력의 망언과 망동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즈음에 감정적인 반일(反日)에서 한걸음 물러나 객관적인 지일(知日)의 관점에서 일본을 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 대한 미움과 애정을 바탕으로 쓴 책이 있었다. '목근통신'(木槿通信). 작가 김소운이 일본인의 모멸에 대한 민족적 항의를 표출한 서간집이다.

6'25전쟁의 폐허 속에 굳이 책을 펴낸 것은 일본 잡지의 한국 비하 기사에 울분을 참지 못해서이다. 그래서 30여 년의 일본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인의 간교한 속성을 풀어내며 그들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았다. 하지만 작가는 일본의 장점을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출간된 지 60년도 넘은 '목근통신'을 오늘 다시 들먹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일 간에 사무친 악연이 그때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발은 시종일관 악착같은데, 우리의 대응은 속절없이 허공을 맴돌았다. 군국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아베 정권과 극우파의 망발이 갈 데까지 간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더니 박근혜 대통령의 비판적 발언을 '여학생의 고자질'에 비유하기에 이르렀다. 독도가 자기네 고유 영토라는 주장을 교과서에 반영하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극악무도한 죄인들은 늘 저렇게 당당한데 참담한 피해자인 우리는 왜 늘 이렇게 벙어리 냉가슴이어야 하는가.

도대체 우리는 무슨 업보로 지구 위에 둘도 없는, 저런 패륜적 집단을 이웃으로 두게 되었던가. 긴 세월 대륙의 문화를 다듬어서 전해준 어머니 같은 나라에 틈만 나면 난자와 능욕을 일삼고도 반성은커녕 적반하장의 악행만 되풀이하고 있는 저 섬나라 왜적에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까.

결국 한'일 간에 가로놓인 원한의 장벽과 현해탄에 서려 있는 혼돈과 검은 안개를 걷어내야 하는 일은 피해자요, 약자인 우리의 몫으로 남는가. 과연 극일(克日)의 가능성은 있는가. 여기 또 한 권의 책을 떠올린다.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

30년간 한국에 살았던 모모세 타다시란 일본인이 쓴 책이다. 그도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 다방면에 걸친 그의 따가운 지적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한국과 일본은 아주 가까우면서도 매우 다른 나라이다. 광우병 괴담에 벌떼같이 일어나 촛불 시위로 정권을 뒤흔들던 시민들, 반면 강진과 쓰나미에도 흔들리지 않는 무서운 질서 의식을 보여준 주민들. 누가 더 선진 국민일까.

일본은 총리가 후쿠시마원전 오염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서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유치했지만, 언론과 국민은 사실상 묵인했다. 우리는 태국이 제시한 6조 원 규모의 치수 사업 수주에 대통령까지 나섰는데, 환경단체가 태국 현지로 달려가 반대 운동을 벌였다. 우리 기업이 부실하고 깜냥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천안함 폭침으로 40여 명의 해군 장병을 잃었는데도 '자작극' 운운하며 딴죽을 거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는 나라답다. 해양주권을 확장하기 위한 한'중'일의 군사적 긴장감 속에서도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죽어라 반대하는 종교인과 전문 시위꾼들이 있는 나라답다.

진보냐 보수냐에 목숨을 걸기보다는 민주적 절차와 기본 질서 그리고 순리를 지키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도 그런 나라를 소원했다. 돈 많은 부자 나라보다는 품격 있는 문화국가가 되어야 저들을 정신적으로라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무시하고 싶어도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다. 그리고 군사대국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후진적인 행태는 우리에게 반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극일의 해답은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 10년, 20년 뒤에는 더 이상 '목근통신'의 해묵은 탄식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작가 김소운과 모모세 타다시의 글들이 한갓 지나간 옛 이야기로 남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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