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바둑이와 철수

입력 2014-01-14 11:17:30

19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고 10월 5일에 대한민국 첫 국어 교과서가 나왔다.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의 책명은 '바둑이와 철수'. 책 표지 상단에 큼직하게 '바둑이와 철수'란 제목을 붙이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국어 1-1'을 부제로 붙였다. 표지 하단에는 문교부라고 발행 기관명을 찍었으니 대한민국 최초의 국정 교과서가 됐다.

이 책은 '국어'가 아닌 우리 고유명사의 조합인 '바둑이와 철수'로 지은 데서 한글 사랑이 돋보였다. 일제강점기에도 국어 교과서는 있었다. 하지만 일제가 만든 '국어' 교과서는 '일본어' 교과서를 의미했고 우리말 교과서엔 '조선어'라고 붙였다. 우리글을 마치 외국어 배우듯 해야 했으니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 교과서에 순수 한글이름을 붙인 것은 당연했다.

이 책의 편찬을 주도한 이는 1916년 만주 지린성 용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창해였다. 그는 해방 이후 미 군정청 문교부 편수사로 우리나라의 첫 국정 교과서 집필을 주도했다. 그가 펴낸 국어 교과서는 '가갸거겨' 등 24개 한글 자모를 익히는 일본식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차라리 '이리 와' '바둑아'처럼 소리와 글씨, 낱말을 한꺼번에 가르치는 방식을 택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정 교과서는 '바둑이'와 '철수' '영이' 등 살가운 이름과 교육을 통해 해방 후 우리 문화의 바로미터 역할을 했다. 일제 잔재가 심각하던 시절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생각의 프레임을 형성하도록 해준 고마움도 컸다.

교육은 가장 큰 나랏일 중 하나다. 그 교육에 기본이 되는 것이 교과서다. 바람직한 학교 교육은 '교원과 학생'이 주체가 되고 걸맞은 교과서와 교육과정이 어우러져 이뤄진다. 여기에 정치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한국사 교과서에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교육계가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좌파 우파 교과서 논란에서 불채택 논란까지 바람 잘 날이 없다. 새누리당은 한국사 국정 전환을 검토하고 민주당은 교과서를 장악하려는 의도라고 맞선다. 정치가 개입하면 교육이 교육적이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번 교과서 파동이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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