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돼버린 서상돈 고택

입력 2014-01-10 10:28:20

별채 책상, 책자 보관 장소로 , 맞은편 이상화 고택과 딴판

8일 오후 대구 중구 계산동 서상돈 고택. 평일 낮임에도 고택을 찾는 방문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방문객들은 5분도 채 둘러보지 않고 고택에서 발길을 돌렸다. 장인환(53'대구 남구 대명동) 씨는 "대구가 자랑하는 독립운동가의 고택인데 명성에 비해 내부가 너무 썰렁하다"며 고택 문을 나섰다.

◆무늬만 서상돈 고택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서상돈 선생 고택이 '무늬만 고택'으로 전락하고 있다. 서상돈 고택은 선생이 1891년에 새로 지은 집으로, 1913년 선생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주했던 곳이다. 당시 선생의 집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오가며 선생과 국채보상운동 등의 독립운동을 도모한 사랑방이자 안식처였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선생의 고택은 창고와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랑채는 고택관리사무실로, 별채는 안내책자와 책상 등 사무용품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고 있어 방문객이 들여다볼 수 없다. 부엌도 문이 잠겨 있다. 그나마 방문객들이 볼 수 있도록 개방한 안채는 전통 고가구 몇 점과 선생에 대한 설명이 쓰인 안내판이 전부다. 안내판도 뒤쪽 벽면에 붙어 있는데다 글씨가 작아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읽기 힘들 정도다. 서상돈 선생의 고택이지만 잘 꾸며진 '전통한옥'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이는 서상돈 고택 맞은편에 자리한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과는 비교되는 모습이다. 64.5㎡ 규모의 이상화 고택은 서상돈 고택보다 다소 작지만 내용은 알차다. 안채와 사랑채에는 시인이 사용하던 유품, 편지 등과 관련 서적들이 놓여 있다. 마당에는 시인의 소개와 시가 쓰인 커다란 비석 3개가 세워져 있다.

서상돈 고택을 찾은 방문객들은 볼품없는 모습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부산에서 친구들과 왔다는 박은별(24'여) 씨는 "책에서만 보던 서상돈 선생의 흔적을 고택에서 느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상화 고택과 달리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 실망했다"며 "선생의 활동에 대한 설명이나 유품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치된 고택

서상돈 고택이 이상화 고택에 비해 푸대접을 받게 된 건 두 고택이 개관한 2008년부터다. 지난 2003년 두 고택은 인근에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서 철거될 위기에 놓였었다. 사라질 뻔한 두 고택은 '상화고택보존운동'을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에 힘입어 두 고택을 매입한 군인공제회가 대구시에 기부채납하면서 복원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두 고택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개관 당시 '상화고택보존운동'을 통해 모인 재원으로 고택 내부 전시를 마친 이상화 고택과 달리 서상돈 고택은 그동안 별다른 관리를 받지 못했던 것.

대구시에 따르면 서상돈 선생과 관련한 대구지역 민간단체는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유일하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서상돈 고택 관리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이상화기념사업회'가 이상화 고택과 함께 서상돈 고택을 관리하고 있는데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이미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서상돈 고택 관리에 직접 나서기는 어렵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적극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도 기본적인 보수'유지만 할 뿐 그동안 서상돈 고택을 방치해 왔다. 권상구 중구 도시만들기지원센터 사무국장은 "대구시는 서상돈 고택을 형식적으로만 관리하고 있다. 지금의 서상돈 고택에서는 선생의 숭고한 뜻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구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인건비 등 운영비 부담으로 이상화기념사업회가 두 고택을 운영하고 있지만 두 고택 관리에 차별을 두는 것은 아니다"며 "서상돈 고택도 지난해부터 내부 보강 작업을 하고 있으며 올해도 그 시대에 맞는 자료들로 고택을 가꿀 계획"이라고 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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