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3일새 잇단 불…이번에도 원인 못 밝히나

입력 2014-01-09 10:45:00

90년대 이후 14건 발생, 11건이 '원인 미상' 남아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팔공산 자락에서 의문의 산불이 잇따라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경찰이 현장감식과 함께 수사에 나선 가운데 9일 오후 여희광(맨 오른쪽) 부시장과 동구청 관계자들이 산불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팔공산 자락에서 의문의 산불이 잇따라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경찰이 현장감식과 함께 수사에 나선 가운데 9일 오후 여희광(맨 오른쪽) 부시장과 동구청 관계자들이 산불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8일 오후 3시쯤 대구 동구 지묘동 신숭겸장군 유적지 뒤편 왕산. 5부 능선까지 올라가니 화재의 흔적이 나타났다. 잡풀들은 검게 불타 손을 대니 가루로 부서졌다. 성인 남성 키 높이의 육송은 아래 밑동 30~50㎝가량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팔공산 자락 왕산에서 3일 간격으로 연달아 불이 났지만 화재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동구 왕산 산불 원인 오리무중=동구 지묘동 왕산에서 5, 8일 잇따라 산불이 발생했지만 화재원인은 오리무중이다. 동구청과 동부경찰서 등이 조사에 나섰지만 방화인지 실화인지 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8일 오전 1시 34분쯤 동구 지묘동 신숭겸장군유적지 뒤편 왕산에서 불이 나 40여 분만에 진화됐다. 이 화재로 산림 160㎡가 불에 탔다. 이에 앞서 5일 오후 6시 26분쯤 비슷한 위치에서 불이 나 1천여㎡를 태우고 2시간 30분 만에 진화됐다. 발화지점은 물론 실화인지 방화인지 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산불은 현장의 물적 증거자료가 불로 인해 소실되거나 진화작업 과정에서 파괴될 위험성이 있다. 이 때문에 산불 발생 초기의 조사와 감식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왕산 산불은 확산을 막는 진화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산불 조사와 감식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화재원인에 대한 다양한 추측과 유적지 훼손 등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5일 화재 당시 담뱃불 등 등산객의 실화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8일 등산객이 드문 오전 1시대에 또다시 산불이 나자 왕산 산불을 방화로 규정하고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등 화재원인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창호(73) 신숭겸장군유적지 관리책임자는 "산불이 유적지로 번질 경우 이를 진화할 수 있는 소화전이 목조건물과 떨어진 도롯가에 있는데 이를 유적지 내로 옮겨야 한다"며 "유적지 중간 길에 문을 설치해 오후 10시 이후에는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림특별사법경찰 무용지물 =동구청 내 공무원 3명이 산림특별사법경찰이 지정돼 있지만 산불 조사와 감식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전문성이 부족하다.

그동안 왕산에서 발생한 산불 중 상당수가 '원인 미상'으로 남는 등 화재 발생의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1990년 이후 발생한 왕산 인근 산불은 현재까지 모두 14건이다. 이 중 78.6%인 11건이 원인 미상이다.

산림청의 산불조사 실무 매뉴얼에 따르면 산불조사는 진화 후 1~2시간 내 실시하도록 돼 있다. 현장보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현장에 도착해서 진화와 함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 이를 통해 발화지점 위치를 확인한 뒤 깃발로 표시하고 감시자를 배치하도록 매뉴얼은 지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왕산 산불에선 야간임을 감안하더라도 매뉴얼대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현장을 보존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버렸다.

동구청 내 산림특별사법경찰은 산불 조사와 감식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5, 8일 산불 때 밤새 진화와 잔불 정리 작업을 하고 아침에는 행정업무를 위해 곧바로 출근을 했다. 산림 관련 일반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현장 조사와 감식을 하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조사활동의 범위도 산림으로 한정돼 있어서 산에서 벗어나 주민들을 상태로 한 탐문수사 등 목격자를 찾는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교육을 통해 산림특별사법경찰로서의 전문성을 다질 기회도 많지 않았다. 산림특별사법경찰이 실무능력을 익힐 수 있는 기회는 1년에 1회(2주일) 법무연수원 교육이 전부다. 산림청이 주관해 매년 캐나다에서 산불 조사와 감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대구 내 공무원 중 1명에게만 해당된다.

강점문 대구시 공원녹지과장은 "올해 상반기 중에 연평균 500여 명인 산불감시원을 600여 명 이상으로 늘려 산불감시에 동원하고 기간도 기존 5월 11일에서 6월 4일까지로 연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구 동부경찰서 형사과 관계자는 "유적지 내 13개 폐쇄회로TV 화면을 확보하는 등 방화와 실화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며 "산으로 접근하는 경로가 다양하고 화재원인을 밝힐 증거도 불과 함께 타 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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