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변호인, 80년대 렌즈로 본 현재

입력 2014-01-07 11:34:40

현종문/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film21c@daum.net

영화 '변호인'(감독 양우석)이 관객 739만(1월 5일 기준)을 기록하면서 모처럼 중년 관객들이 극장 나들이에 나섰다. 5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중년층 관객이 움직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영화 '변호인'에 왜 중년층 관객들이 극장으로 몰렸을까? 물론 영화 한 편으로 관객의 동향을 분석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영화 시장의 구조상 500만 이상 이른바 대박 영화는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화 변호인이 '중년의 힘'을 보여준 원천은 무엇일까? 영화는 1980년대 초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첫 장면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자막이 오히려 고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한 사건과 한 인물의 삶을 통해 80년대 초 신군부 시절 민초의 아픔과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변호인'은 개봉 전부터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각 언론사의 다양한 기사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이는 영화 홍보에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효과가 영화 흥행에 절대적 요소는 아니다. 즉, 영화 흥행의 절대적 요소는 웰 메이드(well made) 즉,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 만든 영화는 관객을 흡입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힘은 관객과의 '소통'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변호인'의 성공은 관객과 소통되었다는 등식이 성립한다.

영화 속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는 자신이 맡은 공안 사건이 고문과 허위로 날조되었다고 주장하지만 누구도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의 진실을 알지만 애써 외면하는 자 그리고 국가 혹은 조직에 충성하기 위해 온갖 불법을 동원해서 '가짜 진실'을 꾀하려는 자의 틈 속에서 송우석 변호사는 소통의 부재를 시대의 눈빛으로 보며 가슴으로 울분을 토한다.

우리 사회는 2013년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극에 달했다. 개인과 개인 혹은 집단과 집단이 상반된 의견으로 충돌하고 서로를 비난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 진영을 옹호해왔다. '소통'보다는 '불통'이 2013년을 지배했으며 이러한 일로 우리가 얻은 것은 사회적 혼란이고 대립과 갈등이었다. 이렇게 입은 상처는 2014년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다름'을 '틀림'이라고 치부할 때 소통의 부재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 소통의 부재는 문제의 해결책에 첫 걸림돌이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변호인'은 80년대 렌즈로 현재를 바라보고 있다. 영화 속 송우석 변호사는 당신의 돈을 지켜주는 변호사에서 당신의 인권을 지켜주는 변호'인'(人)이 되기까지 그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비추고 있다. 현재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80년대 세상과 80년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현재의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경제성장은 했지만 과연 개개인의 삶의 질은 지금 어떠한가? 80년대 초 사회에 첫발을 디디기 직전 청년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중추를 담당하는 중년이 되었다. 당시 정치적 사회적 혼란으로 거센 저항도 했었고 영화 속 송우석 변호사처럼 학벌 문제로 차별받기도 했었다. 그 시대의 혼란과 아픔을 잊거나 혹은 지운 채 살아가다가 불현듯 나타난 '변호인'을 통해 중년들은 정화(淨化)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극장으로 향하는 이유는 '나들이'가 아니라 '동감'(同感)인 것이다.

2013년 우리 사회는 마치 송우석 변호사가 법정에서 진실을 외쳤지만 묵살당하듯이 수많은 현안에 대하여 서로가 외쳤지만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큰 목소리로 외칠 뿐이었다. 이로 인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굳게 닫힌 철문처럼 마음까지 닫아 버렸다. 문(門)고리는 서로 잡고 있으면 상대방이 열어주어도 열 수가 없다.

2014년 새해다. 새해에는 귀를 열고 닫힌 철문을 과감하게 먼저 열어보자.

현종문/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film21c@daum.net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