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120년 전

입력 2014-01-07 07:47:42

120년 전인 갑오년(甲午年'1894년), 19세의 청년 김창수는 황해도의 동학 접주(지방 조직의 최고 책임자)였다. 나이가 어린데도 1천 명이 넘는 제자를 거느렸다고 해서 '아기 접주'로 불리고 있었다. 그는 남쪽지방에서 동학군이 거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호응해 황해도 접주들과 함께 군대를 편성했다. 탐관오리와 왜놈을 다 잡아 죽이기로 결의하고는 자신의 휘하 700명을 이끌고 해주성 공략에 나섰다. 해주성을 지키던 소수의 관군과 일본군에 어이없게 패하고 몸을 숨기는 처지가 되지만, 훗날 위대한 독립운동 지도자가 되는 전기를 맞이한다. 김창수는 뒷날 김구(金九)로 개명하고 호를 백범(白凡)이라 하였다.

같은 해 도산 안창호는 평양 대동강변에 살던 열일곱 살의 목동이었다. 그는 평양에서 청나라'일본 군대 간에 전쟁이 벌어져 가옥이 불타고 명승고적이 잿더미로 변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남의 나라 군대가 우리 국토를 유린하는 것에 충격을 받고는 평생 독립운동에 진력하기로 결심한다.

백범 김구 선생과 도산 안창호 선생은 120년 전 전쟁과 혼란의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고, 그때의 경험이 삶의 지표가 되었다. 그해 갑오농민전쟁, 청일전쟁, 갑오경장 등 대형 역사적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고,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당시 한반도는 아수라장이었다.

120년이 지나 또다시 갑오년을 맞았건만, 그때와 무엇이 바뀌고 달라졌을까.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더니 혼란과 격동의 시기인 것은 여전하다. 요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조선말 상황과 비교하는 담론이 활발해지는 것을 보면 12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국내 정치는 여야 간 대결정치에 매몰돼 있고 국제 정세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까지 개입한 각축전에 끼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기다 북한이라는 불안정성과 불가측성의 '폭탄'까지 갖고 있는 상황이라 120년 전보다 더 나빠진 환경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기회주의자' 혹은 '양심불량자'만 득실대는 정계에 국론을 모으자고 호소해봤자 소귀에 경 읽기가 아니겠는가. 암담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모든 새로움은 절망에서 출발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저력 있는 민족이다. 모두가 희망을 잃지 않는 한 이런 어려움은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새로움만 가득한 사회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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