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영화 '변호인' 돌풍

입력 2013-12-28 08:00:00

연말 결산이 한창인 요즘 한국 영화계는 잔치 분위기로 들떠 있다. 올해 한국 영화 관객이 지난 18일을 기준으로 2억 명을 넘어서서 외형적인 성과가 대단하다. 국민 1인당 4.12편의 영화를 관람해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1천281만 명의 관객이 '7번 방의 선물'을 봤고 지난해 3편뿐이던 500만 명 이상 관람 영화는 '관상' '베를린' '숨바꼭질' 등 8편이나 된다. 흥행한 영화의 장르가 가족 드라마, 사극, 첩보 액션, 스릴러 등으로 다양한 것도 긍정적이다.

영화가 흥행하려면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가 뛰어나야 하고 참신하거나 독특한 소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등 몇 가지 법칙이 있다. 그러나 이런 법칙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연출이 평이하더라도 배우의 연기가 탁월하거나 소재가 평범하더라도 연출이 치밀하면 흥행할 수 있다. 사회적 문제를 다뤄 공감을 자아냄으로써 관객이 몰리는 일도 있다. 2011년에 개봉한 영화 '도가니'는 장애인학교의 성폭력 사건을 다뤄 많은 관객이 같이 분노하고 아파했다.

연말 극장가에 '변호인' 돌풍이 일고 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젊었을 적 변호사 시절을 소재로 다룬 이 영화는 개봉 8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고졸 출신의 힘없는 변호사가 부를 좇다가 시국 사건을 맡아 인권 변호사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렸다. 1980년대 대표적 공안 사건인 부림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극 중 송우석 변호사는 공권력의 부당한 고문과 횡포를 고발한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분노하며 진실을 추구하는 힘이 느껴져 가슴을 울리는 영화이다. 송강호와 곽도원 등 열연을 펼친 출연 배우들이 서울의 한 영화관을 찾았다가 관객들의 기립 박수를 받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부림 사건의 실제 피해자들도 영화를 보고 떠올리기 싫었던 과거를 되새기며 노 전 대통령의 분투를 알게 됐다고 전한다.

'변호인'이 열광적인 반응을 얻는 것은 요즘의 얼어붙은 정치 현실과 맞물린 탓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과 여당은 대선 개입 의혹 규명에 소극적이고 철도 파업에 대해 강경 일변도로 밀어붙이고 있다. 시국 선언이 잇따르고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이 부는 데에서 과거의 억눌렸던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1980년대를 지나간 시간만으로 치부할 수 없으니 답답하고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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