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서 건너와 423년째 마당에서 잘 자라
입동을 넘긴 지난달엔 대구문협의 회우인 최현득, 박해수 님과 함께 김종협 님의 초대로 안동 금계마을 학봉선생 종택을 방문했다. 선생의 유물이 전시된 기념관, 문화재로 지정된 자료 503점 등 수많은 고서와 전적이 보관된 운장각을 둘러보고 사랑채에 앉았다.
곧바로 다과상이 들어왔는데 아주 단출하면서도 깔끔한 차림새가 여느 여염집과는 달라 휴대폰에 사진으로 찍어 저장해 두었다. 전통음식 안동식혜를 맛보는 행운도 가졌다.
담소 후에 안채도 둘러봤다. 경상도 사대부 집이 그렇듯 입구(口)자 형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으나 섬돌 밑에 석창포가 듬성듬성 생육하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웬 석창포냐?'고 물었더니 "학봉 김성일(1538~1593) 선생께서 조선통신사로 일본 가셨다가 돌아오시는 길에 대마도(對馬島)에서 가져 오신 것으로 423년째 종택과 임천서원의 안마당에 생육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아, 그렇구나!'하면서 이 특별한 만남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필자도 지난해 대마도에 갔었다. 전직이 산림공무원이라 그곳 유적은 물론 식생(植生)에도 관심이 많았다. 편백과 삼나무의 울창한 숲이 부러웠지만 도랑에서 지천으로 자라는 석창포가 강한 인상을 주었다. 탐이 났지만 함부로 가져올 수 없는 법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사진으로 담아왔다. 그런데 400여 년 전 선비인 학봉 선생께서 석창포가 귀한 식물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시고 가져왔을까?
석창포(石菖蒲'Acorus gramineus Soland)는 천남성과의 늘 푸른 키 작은 여러해살이 풀이다. 주로 냇가 돌 틈에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6, 7월에 노란 꽃이 피는데 그렇게 화려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교과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강희안 저, 이하 소록)에 등장할 만큼 선비들이 좋아했던 풀이다. 계명문화대학의 김용원 교수는 종이, 붓, 먹, 벼루의 문방사우에 석창포를 추가하여 문방오우라고 하여 다양한 분경(盆景)을 만들어 선비들의 본향이라고 할 수 있는 소수서원에서 전시회까지 열었었다.
'소록'에서는 또 소동파(蘇東坡, 蘇軾), 사첩산(謝疊山, 사방득), 참료(參蓼, 도잠) 등이 석창포를 두고 읊은 시를 소개하고 있는데 가장 근사한 시는 참료(송나라 때 스님으로 소동파의 벗이기도 하다)의 작품인 것 같다.
'차가운 시냇가 모래자갈 깔린 도랑 가/ 신비한 싹이 돋아나 빼어나게 아름답네/ 아름다운 군자가 캐어 돌아오니/ 무늬 새겨진 돌과 짝을 이루어/ 맑은 잔물결을 머금고 있네/ 아홉 마디 서린 뿌리는 서리나 눈이 내려도 시들지 않으니/ 고요한 서재에 두고 언제까지나 좋아하리라' 하였다.
약효도 다양해 '가을에 뿌리줄기를 캐서 잔뿌리를 다듬어 버리고 햇볕에서 말린다. 정신을 말게 하고 혈을 잘 돌게 하며 풍, 습과 담을 없앤다. 하루 2, 3g을 달임약으로 먹는다. 외용약으로 쓸 때에는 달임약으로 씻거나 가루 내어 뿌린다'고 하였다.(출처: 동의학사전)
학봉 선생은 통신사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일본의 침략정황에 대해 정사 황윤길과 다른 보고를 하였다' 하여 오늘날까지 사계의 견해가 분분한 실정이다. 식민사관의 결과로 보는 견해도 많다. 그러나 당시 간교한 일본을 상대로 조선통신사로서 직무를 다하려고 무던히 애썼고, 임란 중에는 흩어진 민심과 지방 관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의병을 모아 관군과 협력게 하여 진주대첩을 이끄는 등 많은 공을 세웠으나 진중에서 병을 얻어 순국하여 선무원종일등공신에 책봉되신 분이다.
통신사의 임무를 수행하고 귀국할 때 일본과의 마찰과 일행과의 갈등 등 고뇌가 크고 심기가 불편했을 터인데 그 와중에도 석창포를 챙긴 옛 선비의 여유로움과 풍류를 새삼 연상하게 된다.
1590년 5월 1일 부산을 출발해 대마도를 거쳐 교토에 들어갔다가 1591년 1월 10일 다시 대마도에, 1월 28일 부산에 도착했다고 하니 10여 일 대마도 체류기간 중에 수습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연유를 볼 때 학봉종택의 석창포는 선생의 귀중한 유품이다. 그것이 안마당에서 선생의 우국충정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습한 곳에 잘 자라는 식물이라는데 유의하여 대량으로 번식해 종택의 넓은 바깥마당과 학봉 선생 관련 유적지에 많이 심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특히 올해는 선생께서 순국하신 7주갑의 해라 더욱 뜻있는 것 같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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