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속 신뢰·성실로 일군 금자탑
"성실한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해외 90여 개국에 의자를 수출하는 부호체어원㈜은 온갖 시련 속에서도 도전과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다. 회사는 계속적인 성장을 위해 직원을 꾸준히 채용, 중견기업에 올랐다.
◆위기 속에서 탄생
부호체어원은 1994년 설립됐다. 회사는 김노수 대표가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태어난 '작품'이다. 젊은 시절 농사꾼이었던 김 대표는 지역에서 농협 이사와 동네 이장 등을 지냈을 정도로 농사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지역 단위농협 조합장 선거에서 실패한 뒤 김 대표는 지인의 권유로 선풍기 제조회사에 납품하는 기업에 투자했다.
이때부터 김 대표는 농사꾼에서 경영자로 바뀌었다. 다른 투자자에게 손해 본 투자금의 일부를 돌려주고 자신 혼자 회사를 꾸려나가기 시작한 것. 초반 상황은 괜찮았지만 계절을 타는 제품인 탓에 주문량이 일정하지 않았다. 공장을 옮기고 납품처를 바꾸는 등 변화를 시도했지만 상황이 풀리지 않았다.
김 대표는 "남의 제품만 만들어주다가는 내가 부도날 것 같아 모두 접었다. 회사를 접고 쉬고 있는데 예전 직원이 찾아와 '의자'를 만들자고 제의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1994년 '부호체어원'이 설립됐고 1996년 말 성서산업단지 내 3천480㎡(1천60평)의 부지를 구입해 공장을 이전했다. 기계 설비를 3배 이상 늘리고 전국 영업망을 갖췄다. 김 대표는 "서울 영업소를 운영하던 중 영업직원이 영업비용을 개인적으로 탕진하는 등 비리가 끊이지 않자 직접 서울을 오가며 영업을 했다"며 "'신뢰'와 '부지런함'을 채용기준으로 삼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고 말했다.
◆연구개발 회사
현재 부호체어원은 연구에 집중해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매년 매출의 10% 정도를 신제품 개발에 투자하고 있는 것.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는 수출길을 여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다. 김 대표는 "IMF 때 우리 회사는 오히려 호기를 맞았었다"며 "PC방이 늘어나면서 의자 판매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영업 덕분에 주문이 늘어났고, 수출에도 눈을 돌리게 됐다. 회사 관계자는 "IMF 당시 환율이 높아 국내시장보다 수출이 더 큰 이익이 남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막상 수출 계약을 했지만 납품에 애를 먹었다. 의자를 실은 컨테이너가 적도를 지나 남반구로 가면서 높은 온도로 인해 모양이 뒤틀린 것은 물론 러시아로 수출하는 의자는 추운 날씨로 인해 높이 조절용 가스가 얼어 모두 불량이 났다.
김 대표는 "수출을 위해서는 제품이 더욱 우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때부터 매년 10억원씩 연구비용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2005년 기술연구소 설립 인가를 받아 다음해부터 본격적으로 연구 개발을 시작했다. ISO 9001 품질보증업체 인증과 신기술개발분야 벤처기업으로 지정, Q마크, GQ마크, ISO 14001 인증 등은 모두 연구에 매진한 덕분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국내 KS를 인증도 받았다. 김 대표는 "대구에서 의자업체가 KS를 받은 곳은 우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현재 부호체어원은 160여 가지의 의자를 생산하고 있다. 인체공학적인 것은 기본이고 다양한 기능성과 세련된 디자인이 이 회사 제품의 인기 비결이다. 또 회사는 대구시 공동브랜드 '쉬메릭'에도 참여, 지역 브랜드를 강화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김 대표는 "열심히 한 덕분에 올해 무역의 날에서 1천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며 "의자만으로 1천만달러어치 수출한 것은 국내에서 우리가 두 번째다"고 말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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