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볼 수 없던 세계 빛으로 밝혀…질병 분자 파악 치료제 개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었던 미시(微示)의 세계를 태양빛의 수백만~수억 배의 밝기로 볼 수 있는 도구가 방사광가속기이다. 전자(電子)를 움직여 빛을 만드는 장치로, 가속기에서 나온 빛으로 세포 내부를 볼 수 있다. 초대형, 최첨단 현미경이라고 할 수 있다. 단백질 구조, 분자 모양과 움직임 등 일반 실험실에서 확인할 수 없는 미시의 세계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기기인 셈이다. 이 기기를 통해 미시의 세계를 확인해 물리, 화학, 생명공학, 재료공학 등 기초과학뿐 아니라 의학, 반도체, 신소재 등 다양한 응용과학 분야의 첨단 연구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암모기 흡혈과정도 관찰
방사광가속기는 특히 질병분자의 모양과 움직임의 근간이 되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혈액 속 단백질 구조를 파악해 질병을 치료하는 다중진단에 필수적인 장치이다. 방사광가속기를 통해 AIDS 바이러스, C형 간염 바이러스, 암 유발 바이러스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신약 개발의 주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포스텍 포항가속기연구소는 이 같은 3세대 방사광가속기를 갖추고 있고, 나아가 4세대 가속기 구축에 나서고 있다. 3세대 가속기와 4세대 가속기의 차이는 빛의 밝기와 '결맞음'(파동의 간섭현상) 여부로 볼 수 있다.
3세대 가속기는 태양보다 1억 배가량 밝은 빛을 낸다. 4세대 가속기는 이보다 100억 배 밝고, 태양보다 100경 배(1경은 1조의 1만 배) 밝은 빛을 낸다는 것. 빛의 밝기가 강하면 강할수록 단백질에 투입되는 빛이 많아 단백질 내부를 관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이 때문에 3세대 가속기로는 여러 과정과 기기를 이용해 단백질 결정을 만든 뒤 빔을 통해 시료를 볼 수 있지만, 4세대 가속기는 강한 빛에 의해 결정을 만들지 않고도 시료의 단백질 구조와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3세대 가속기가 단백질의 외관을 인식할 수 있다면, 4세대는 단백질 내부구조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3세대 가속기가 죽은 세포의 속만 볼 수 있다면, 4세대 가속기는 살아 있는 세포의 내부 움직임까지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4세대 가속기로는 핏속의 질병과 관련된 단백질 표적(바이오마커)과 분자족집게(압타머)가 결합한 3차원적인 모습을 알 수 있고, 더 나은 분자족집게를 만들어 단백질과 약을 결합한 치료제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조윤제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는 "분자 모양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기기가 방사광가속기"라며 "특히 4세대 가속기는 3세대보다 X선 강도가 수만 배 강해 단백질 결정을 만들지 않고도 미량의 혈액을 추출해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포스텍 생명공학연구센터는 가속기를 통해 알아낸 질병분자의 모양과 움직임 등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질병 관련 단백질을 집어내고, 다시 가속기를 통해 질병분자를 파악해내는 방식으로 다중진단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포항가속기연구소는 3세대 방사광가속기에 최첨단 라인을 구비하고 있다.
X선 나노 빔 라인(X선 현미경)은 나노(10억 분의 1) 크기로 감지하는 빛으로, 세계 각국의 인종별 머리카락 형태까지 볼 수 있다. 마이크로 빔 라인은 암모기가 피를 빨아먹는 과정을 보면서 연구할 수도 있는 설비이다. 이처럼 3세대 가속기는 X선 현미경, X선 카메라 등 첨단 정밀기기를 갖추고 있다. 이 같은 설비를 이용한 X선 이미징 연구를 통해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와 단백질에 대한 3차원 고해상도 구조를 규명함으로써 진단분야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신약 개발, 진단'치료법 개발 등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
◆태양빛보다 100억 배 밝아
정부와 포스텍은 1천500억원을 투입해 1994년 3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완공했다. 포스텍은 3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해 과학논문인용색인(SCI)에 등재한 논문만 3천500여 편을 내놓았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가동되면 이를 통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할 과학자도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일고 있다.
포스텍 포항가속기연구소는 현재 4세대 방사광가속기 구축 추진단을 구성해 3세대보다 100억 배 밝고 강한 빛을 내는 4세대 가속기 구축에 나서고 있다. 2011년부터 국비 지원을 받아 설비에 나서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국비 4천억원 중 2천300억원이 아직 투입되지 않아 내년 말 완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포항 3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둘레 280m의 원형가속기이지만,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길이 710m의 선형가속기를 포함해 총 길이가 1.1㎞에 달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운영 중인 나라는 미국과 일본 2개국뿐이고, 독일'스위스'영국'중국 등 4개국이 현재 4세대 가속기 설비를 짓고 있다.
4세대 가속기가 완공되면 원자(原子) 세계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을 확보하는 셈이다. 4세대 가속기는 셔터 속도가 3세대 보다 1천 배 정도 빨라져 1천조 분의 1초 단위인 '펨토초'(fs)로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3세대 가속기는 단백질 촬영에 수시간이 걸리지만, 4세대 가속기는 1초에 끝낼 수 있다. 또 식물의 광합성이 이뤄지는 시간은 350fs인데, 3세대 가속기로는 광합성 과정을 볼 수 없지만 4세대 가속기로는 가능하다. 결국 4세대 가속기는 살아 있는 상태의 단백질 구조와 움직임에 대한 분석이 가능하고, 눈으로 파악할 수 없는 광합성 현상과 같은 자연현상들도 관찰할 수 있다.
이 같은 기능을 활용해 인공장기 등 생체 모방기술과 관련된 분야에도 접목이 가능하다. 또 빛의 파장이 짧아지면 반도체 회로선폭(線幅)도 더 줄여 반도체의 집적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4세대 가속기를 통해 국내 IT산업 경쟁력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것.
김광우 4세대 방사광가속기 구축 추진단 부단장은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과학현상들에 대해 밝힐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며 "인류의 생명과 삶에 직결되는 의료 진단분야를 비롯해 IT, BT 분야 발전에 큰 획을 긋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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