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태국 전통음식 '톰얌꿍'

입력 2013-12-13 07:58:03

"오동통 새우살 국물이 끝내줘요"…세계인 입맛 맞춘 100여 가지 메

태국은 이탈리아와 일본, 중국 등과 함께 세계 음식 강국으로 꼽힌다. 타이푸드(Tai food)로 대변되는 태국 전통음식은 동남아 특유의 향신료의 벽을 넘어 지구촌 세계인들의 보편적 입맛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태국 음식의 세계화는 태국 정부가 '키친 오드 더 월드'(Kitchen of the world)라는 프로젝트를 줄기차게 추진한 결과다. 톰얌꿍(Tom yam kung)은 세계화된 타이푸드의 대표격. 중국의 샥스핀과 프랑스 부이야베스와 함께 세계 3대 수프에 등극했다.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톰얌꿍의 식재료와 간편한 조리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식 세계화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

◆평범한 재료의 톰얌꿍, 지구촌 세계인 입맛 사로잡아

푸미폰 태국 국왕의 생일잔치 기간이 끝난 직후인 9일 방콕의 거리는 잉락 친나왓 총리의 실정을 성토하는 100만 시위대들로 가득 메워졌다. 태국 문화부 국제교류과 직원 카시딧 찬드라시리(27) 씨는 시위로 인한 최악의 교통난을 뚫고 태국 전통음식점을 안내하겠다며 찾아왔다. 태국 공무원들이 얼마나 자국 음식 홍보에 열심인지를 그대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카시딧 씨의 안내로 찾아간 곳은 방콕 실롬구 콘벤트 스트리트의 나트(Naj) 레스토랑. 통역을 맡은 국제민간문화예술교류연맹(IOV) 문형석(48) 사무총장은 "가업으로 2대째 이어 오는 30년 전통의 타이푸드 전문 레스토랑"이라며 "전통 방식을 지켜온 몇 안 되는 태국 전통 음식점"이라고 귀띔했다.

나트 레스토랑 2대 주인인 타나폰 마카왓(29) 씨와 그의 여동생 폴리판 마카왓(25) 씨가 "방금 시위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길"이라며 주방으로 안내했다. 전통 방식과 퓨전형 두 종류의 톰얌꿍 조리과정을 보여 주겠단다. 건물 2층에 마련된 주방에는 라임과 타이고추, 생강, 레몬그라스, 향채(고수)와 파, 버섯 등 양념과 각종 야채 바구니가 준비돼 있고 타이거 새우도 미리 가지런히 손질돼 있었다. 또 고추 다진 양념 같은 칠리소스와 남뿔라라고 하는 액젓, 설탕, 코코넛 밀크도 준비했다. 모두 동남아에서는 비교적 저렴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다.

타나폰 씨는 "태국 음식은 레시피가 별도로 정해진 것이 아니고 항상 세계인들의 입맛에 맞춰 변하고 있다"고 했다. 톰얌꿍만 해도 종류가 100가지가 넘는 이유다.

그가 먼저 전통방식의 톰얌꿍부터 조리했다. 꼬리 살을 따로 떼어 낸 타이거 새우의 머리를 갈라 하얀 새우 골을 빼내 작은 그릇에 모았다. 새우 골을 달군 번철에 볶자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타이고추를 길게 썰고, 버섯도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꼬마 양파를 으깨고 레몬그라스와 까랑까우라는 생강을 채썬 뒤 손절구로 부서질 만큼만 찧는다. 번철에 새우머리 국물을 부은 다음 먼저 레몬그라스와 양파, 라임 잎을 넣고 끓어 오를 때까지 국자로 저어 준다. 새우는 국물이 팔팔 끓을 때 넣어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새우 꼬리가 오랜지 색을 띠면 익혀 둔 새우 골과 함께 버섯과 스윗베세라는 연한 나물을 넣고 즉시 불을 끈다. 그 후에 라임을 짜 넣어야 쓴맛이 나지 않는다고. 마지막으로 타이고추를 넣고 액젓과 설탕으로 간을 맞춰 그릇에 담아 낸다.

◆매운맛으로 화끈한 입안은 달콤한 망고 후식으로 정돈

퓨전형은 새우 골을 파내 별도로 조리하지 않는다. 새우머리 국물에 으깬 양파와 절구에 짓이긴 타이 홍고추, 잘게 다진 레몬그라스, 손으로 찢은 라임 잎을 한꺼번에 넣고 끓인다. 국물이 팔팔 끓으면 새우와 버섯을 넣고, 칠리소스를 넣어 국물을 붉게 한다. 여기에 흰색의 코코넛 밀크를 적당히 추가하면 국물이 핑크색을 띠게 된다. 설탕과 액젓으로 간을 하고 라임을 짜 신맛을 첨가하면 전 세계에 대중화된 톰얌꿍이 된다.

끓여 낸 톰얌꿍을 손님상에 내기 전에 미양캄이라는 땅콩과 포멜론 샐러드, 닭꼬치, 쌀과자, 볶음면을 에피타이저로 냈다. 쌀밥을 곁들여 낸 전통방식의 톰얌꿍은 목구멍이 아릴 정도로 국물이 맵지만 입안은 깔끔했다. 아삭거리는 새우살과 살짝 익힌 꼬마 양파의 씹히는 식감이 상쾌했다. 알싸하고 강한 신맛에 금새 이마에 땀이 맺힌다. 강한 매운맛이 입안에서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 매운맛은 견딜 만 한데 라임으로 낸 신맛은 갈수록 더 자극적이었다. 매운맛을 중화시키며 먹으라고 오이와 양배추, 그린빈, 콩나물 등 야채를 생으로 곁들여 냈다.

"동양적 향기가 집약된 음식이지요. 맵고 시고 단맛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새로운 맛을 창출합니다."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타나폰 씨의 질문에 입이 매워서 대답도 못할 지경이었다. 입술이 오그라질 듯한 강한 신맛도 매운맛을 더욱 부추겼다. 매운 데는 쌀밥이 최고. 얼른 숟가락 가득 떠 입 안에 넣고 보니 매운맛이 좀 덜한 듯한 기분. 후식으로 나온 달짝지근한 망고가 구세주였다. 녹을 듯 부드러운 식감이 입안의 매운 기운을 싹 씻어 줬다. 차가운 과일 아이스크림도 진정제 역할을 한다. 뒤집혔던 입안이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톰얌꿍은 매운맛으로 불을 질러 입안에 강한 자극을 주고, 달콤한 후식으로 달래준다. 그래서 톰얌꿍은 한 번 먹으면 중독이 된다고 하는가. 요리과정을 살펴보며 평범한 재료에 맵고 신맛만 유별나다 여겼지만 결국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퓨전형 톰얌꿍은 전통 방식에 비해 맵고 신맛의 강도가 훨씬 덜했다.

◆태국음식 세계화 본부의 다음 목표는'타이니스'(Thai-ness)

"톰얌꿍의 매력은 맛의 조화에 있습니다." 나트 레스토랑의 요리사 폴리판 씨는 "톰얌꿍은 청양고추보다 5배나 매운 타이산 쥐똥고추와 침이 저절로 고이는 라임즙의 신맛, 그리고 남뿔라 액젓의 감칠맛, 코코넛 밀크의 고소하고 달달한 맛의 어우러지며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오묘한 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태국 문화부 찬수다 룩스폴무앙(54) 행정차관도 "톰얌꿍은 화합과 조화로움, 사랑이라는 태국 국민들의 철학이 담긴 음식"이라며 "그냥 음식만 즐긴다는 단순함에서 벗어나 태국의 역사와 철학을 인식하는 차원에서 음식을 음미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타이푸드 세계화를 위한 태국 정부의 프로젝트는 2004년 400여 개에 불과하던 태국음식점이 2008년엔 1만3천개로 늘어 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뒷받침을 했다. 태국은 일본과 함께 인위적인 노력으로 전통음식 세계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다. 태국 정부는 부처 간 벽을 오래전에 허물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통합지원을 하고 있다. 일본도 JRO라는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일식 고급화와 현지화의 전략으로 세계 음식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태국 상무부 수출진흥국 산하에 설치된 태국음식 세계화 본부는 다양한 전략과 제도를 마련해 '태국다움', '태국스러움'이란 뜻의 '타이니스'(Thai-ness)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는 태국 정치권의 잦은 정쟁과 정권교체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추진되고 있다.

사실 톰얌꿍의 건더기는 새우 두 마리가 전부다. 다른 것은 모두 야채와 향신료뿐. 이 음식을 앞세워 태국 전통음식 세계화에 성공한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닐 수 없다. 독특한 동남아시아의 향이 태국음식 세계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당초의 지적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맵고 신맛과 향의 특성을 살려 내 동양음식의 신비로움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일본 문화를 일식에 접목시켜 세계화한 일본이나 태국이 자국 문화를 타이푸드에 접목시켜 세계화한 것은 같은 방식이다. 싸이와 소녀시대 등 세계화된 한국의 대중문화와 동남아의 식지 않는 한류 열풍은 한식 세계화의 호기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추진 실적은 매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태국 방콕에서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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